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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에서 흐르는 맛 외1편 /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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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20-02-25

 

  © 시인뉴스 포엠



고립에서 흐르는 맛

 

 

 

겨울을 품은

흐린 하늘을 읽어요

 

구름에서 번식된 흰 눈이

회색 공중을 열고 무수히 쏟아지면

수정할 수 없는 폭설이

지상의 풍경을 바꿔요

 

허공을 점유하며 내리는 눈발이

어느새 몸의 둘레에 촘촘히 쌓여요

 

대설이, 온 세상을 빠뜨리고

눈이 쌓인 바닥에는 어제가 들어있어요

 

아직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는

하얀 고백이 입안에서 설레고

내 영혼을 어루만진 사람과 발이 묶여

불쑥 나타난 폭설에 갇히고 싶어요

 

그대와 함께

고립 속에서 있는 맛은 어떤 것일까요

 

서로의 입속에 달콤한 향으로 있고 싶어요

 

 

 

 

 

 

 

 

 

 

 

 

 

 

트라우마

 

 

 

도시는 얼어있다

 

계절은 차가운 색으로 번지고

별과 별 사이에도 겨울이 왔다

 

강남대로 횡단보도 앞

빨간불에서 파란불 점멸 숫자가 켜졌다

 

건널목을 걸어가는 내 눈 속으로

신호등이 푸른 숫자를 타전한다

 

15, 14, 13, . . .

14 숫자에서 소름이 온다

 

머릿속에 트라우마가 번식하고

그날이 창백하게 걸어온다

 

추워서 피웠다는 불길이

한 사람을 싸늘하게 데리고 갔다

 

그렇게 찬 별로 간 아픈 기억

오늘 같은 날, 절반이 슬픔이다

 

사라지지 않는 트라우마

이제 소멸됐으면 좋겠다

 

그날처럼 눈송이가

점멸등 숫자에 떨어지고

 

하얀 눈이 아픔을 덮고 있다

 

젖은 하늘을 닦아

내 눈동자에서 거닐고 있는

 

그 사람의 별을 찾는다

 

 

 

 

 

 

 

 

 

 

이현경

서울출생

『허밍은 인화되지 않는다』

『맑게 피어난 사색』

서울시 시민공모전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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