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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만큼 왔니 외 1편 / 허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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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20-02-21

 

  © 시인뉴스 포엠



어디만큼 왔니 외 1

 

허은희

 

 

 네가 아직 도착 전이라는 걸 알았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벌들이 날아다녔어. 간간히 귓바퀴에 웅웅거리던 소리를 이명이라고 생각했지, 나는.

 

 벌들의 날갯짓이 육각형이 될 때까지 또 다른 육각형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내 머리통을 채울 때 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너는. 판자촌처럼 옹색하게, 꼬불꼬불 얽힌 골목 어디쯤. 너는 구차하게 살아 있지. 너에게 닿기 위해 벌집을 하나씩 두드려. 쏘인 손등이 퉁퉁 부어올라. 머리통보다 더 커진 손으로 헛발질을 해. 두드리는 자 열릴 것이라는 희대의 거짓말을 집어 던지고. 꾸역꾸역 들어찬 벌집이 머리통을 부수고 눈 코 입 귀 구멍구멍으로 흘러나올 때까지. 네 집이 내 발 앞에 공손히 무너질 때까지. 네가 알몸으로 빛날 때까지. 의기양양 팔짱 끼고 서 있어야지.  

 

 이명이 아니라 이몽이었어. 슬금슬금 곁눈질로 나를 살피며 너는. 들키지 않으려고 너는. 잘못 울리는 알람처럼 툭툭 간만 보는 너는. 한 번도 제 시간에 깨우지 않지. 못갖춘마디에서 늘 박자를 놓치는 나를 꿰뚫고 있지.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게 마이크를 내려놓고 나는. 도착 전 도착 전 도착 전. 후렴구에 너를 가두고 씹고 또 씹지.

 

 

 

 

 

 

 

 

사탕과 설탕

 

                                 

당신과 나는 때때로

등을 맞댄 샴쌍둥이가 됩니다

가장 가까워, 가장 먼 곳에서 온 방문자 입니다

 

등 뒤는 안개 속 미로입니다

당신의 입술을 나는 더듬지 못합니다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며

당신은 Know

나는 No를 읽습니다

당신의 Know를 나는 No로 듣습니다

나의 No를 당신은 Know로 듣습니다

 

우리의 입과 귀는 이처럼 정직합니다

 

정직은 불안의 눈속임이라고

당신은 내 눈에 보청기를 달아줍니다

내 귀는 벙어리가 됩니다

 

해질녘까지 이어지는 지루한 숨바꼭질은

당신과 나를 모사(模寫)하는 일

 

등에 묶인 숨은그림은 안전합니까

 

 

 

 

 

  

 

허은희 :

200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열한 번째 밤』.

28회 인천문학상 수상.

3회 사사사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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