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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대작(對酌) 외1편 / 김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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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11-30

 

▲     © 시인뉴스 포엠



처음처럼 대작(對酌)

 

입술 한 번 댄 적 없는 처음처럼

소주잔이 네 턱 아래 놓여 있다.

너도 끝이고 나도 끝이다 싶어

내 입술에만 댄 소주잔

처음처럼 소주잔은 소주병이 처음처럼 비어갈수록

빛난다, 내가 사준 브로치의 가슴같이

 

브로치 대롱거리는 네 왼쪽에 기댄 적 있다.

그 밤 내 왼쪽 쿵쾅거림도 들었다.

사실이었을까, 술잔을 꽝 내려놓을 때

 

우리가 돌아다닌 수월리 함박리 구라리

소주리 연탄리 파전리 주정리 외치리 설마리 망치리의

밤과 밤의 노래에 대하여

사실이었을까, 술잔을 다시 꽝 내려놓으며

 

너와 내가 오늘밤이 끝이어도

끝이 아닌 것처럼 소주잔을 채워들고

여기, 파전을 외친다 입술에서 테이블이 망가지도록

 

처음처럼 소주잔에 까마귀가 날고 있다.

 

 

 

 

 

 

슬픔들

 

나는 그냥 나무 아래 서 있는데 벚꽃이 피어요 벚꽃은 슬픔들인데 벚꽃이 피어요 꽃은 네 머리에 꽂혀있어요 꽂힌 꽃은 꽃이 아닌데 머리에서 피어요 전에 네가 걸었던 길이 잇따라 피어요 내 앞에서 미친 듯이 처음인 듯.

 

나는 그냥 지나가고 있었는데 꽃이 피었어요 비온 뒤에 피었어요 울렁울렁 피었어요 네가 심하게 피어서 누워있었을 뿐이에요 찬비가 두근두근 심해서 엎드려있었을 뿐이에요 나를 사랑하지 말아요 나는 아파요 네가 건네준 볼이 이렇게 가까이서 달아올라요 우리는 꿈에서라도 키스한 적 있나요.

 

나는 다만 길을 잃었을 뿐이에요 회색을 건너고 있는데 벚꽃들이, 저 분홍이 이 분홍이 처음인 듯, 전에도 처음인 듯, 나를 벚꽃들 아래로 데려갔어요 우리는 처음으로 키스한 적 있나요.

 

네 무성한 머리카락 사이에서 벚꽃이 오늘 교회종소리처럼 피어요 엄마목소리처럼 피어요 어제의 빗소리처럼, 너를 상상한 입술처럼, 피어요.

 

나는 그냥 나무 아래 서 있었을 뿐이에요 지나갔을 뿐이에요 그래서 그냥 피었어요 미친 듯 벚꽃들.

 

 

 

     

 

 

김려원

 

2017년 진주가을문예 당선

변방 동인

 

처음처럼 대작(對酌), 슬픔들

- 2019 변방 제34얼룩무늬 손톱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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