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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적으로 순환하는 너와 나의 설원, 그리고 파라다이스 혹은 샴쌍둥이 외 1편 / 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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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10-04

 

▲     © 시인뉴스 포엠



기형적으로 순환하는 너와 나의 설원, 그리고 파라다이스 혹은 샴쌍둥이 1

 

김희준

 

 

 

 

 

아뇨, 설원 끝으로 가요

켄과 메리 나무 앞에 세워주세요

 

초인종이 울린다 투명하고 세속적인 밤이 타닥인다 서력기원부터 쌓인 첫눈이 유리에 가득하다 닿는 건 가져가렴,

 

나는 가만히 젖는다 말린 종이처럼 눅눅해진 나무의 체질처럼

 

첫눈이 되고 싶어

 

깍지를 낀다 신기루도감에는 잠들지 않은 순록이 세기를 기다린다 몸을 포개볼까 고매한 책갈피가 될까 서기를 기록할까 세상 끝으로 가면 녹슨 율령을 새긴 내가 물기 없이 말라가겠다

 

춥진 않니?

 

초인종이 울린다 망설이다가 어항에 눕는다 물비린내가 난다 어항은 물고기를 믿지 않는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물이 오래 고인다면 젤리가 될지 모르지 말캉한 몸을 가진 켄과 메리는 하나의 길을 찾았을까 통조림으로 저녁을 때우고 그 안에서 잠을 잔다 빈 캔을 뒤집으니 젤리 속에 갇힌 내가 떨어진다

 

첫눈이 따뜻하면 좋겠어

 

그리하여 어항이 따뜻하면 좋겠어 금붕어가 따뜻하면 좋겠어

 

초인종이 울린다 투명하고 세속적인 밤이 시작될 때 나는 나를 찾고 나를 맞이한다 안녕, 위태로운 피부가 깨진다 밤이 말라간다 극지의 오로라가 몸을 펼친다 근사한 지느러미가 결정체로 남는다면

 

나는 설원의 행성이 되어야겠다 불온한 내가 나를 기다리는 곳에서,

 

빙하의 결말이 첫눈이라는 말, 순록은 결빙된 입김에서 달리고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자 내가 서있다

 

우리의 탯줄과 켄과 메리 나무 아래 두고 온 이름을 생각한다

 

내 뒷모습은 어땠었나 고갈되지 않은 두 개의 낙원이 팽창한다 낮과 밤이 일시에 요약된다

 

초인종이 울린다

 

   

 

 

 

 

제페토의 숲

 

 

 

 

 

거짓일까 바다가 격자무늬라는 말,

 

고래의 내장에서 발견된 언어가 촘촘했다 아침을 발명한 목수는 창세기가 되었다 나무의 살을 살라 말을 배웠다

 

톱질된 태양이 오전으로 걸어왔다

 

가지마, 나무가 되기 알맞은 날이다 움이 돋아나는 팔꿈치를 가진 인종은 초록을 가꾸는 일에 오늘을 허비했다 숲에는 짐승 한 마리 살지 않았다 산새가 궤도를 그리며 날았다

 

지상의 버뮤다는 어디일까

숲에서 나무의 언어를 체득한다

 

목수는 톱질에 능했다 떡갈나무가 소리 지를 때 다른 계절이 숲으로 숨어들었다 떡갈나무 입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목수는 살목범殺木犯이었으므로

 

진짜일까 피노키오, 피노키오 떡갈나무 피노키오 개구쟁이 피노키오 피노키오, 피노키오 귀뚜라미 떡갈나무 요정은 피노키오를 도와주지요 삐걱삐걱삑삑삐걱삐걱삑삑삐걱삐걱삑삑 삐걱삐걱삑삑 개구쟁이 피노키오 나무인형 피노키오 피노키오 피노키오

 

숲으로 가게 해주세요

 

나무는 물기가 없었다 바람은 간지러운 휘파람이 되었다 빽빽하게 그린 나무의 결이 달랐다 동급생 사이에 전염된 그림, 면역체계를 찾으려면 격자무늬를 수혈 받아야한다

 

소리를 가져간 피노키오 숨이 언어인 피노키오 참말 하는 피노키오 떡갈나무 피노키오 삐걱삐걱 피노키오 진짜일까 피노키오 나무인형 피노키오

 

모든 책이 은밀해졌을 때 나는 쫓겨났다

저 너머를 건너는 거짓말이 길어졌다

 

피노키오가 인간을 키운다 다각형 몸이 심해에 잠긴다 고래가 뒤척일 때 인간은 나무가 되었다 나무는 나를 읽어낸다

 

해체된 태양이 떠오르는 남쪽에서부터 창세기가 시작되고

 

나는 제자리걸음을 한다

 

사라진 숲의 버뮤다에 새들이 궤도를 바꿔 날았다

 

 

 

 

 

 

 

*1994년 경남 통영 출생. 2017시인동네등단.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 재학. 현대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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