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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물고기 외 9편 / 김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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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9-29

 

▲     © 시인뉴스 포엠

 

 

미스 물고기 외 9

 

 

 

 

 

가게 문을 열면 풍경소리가 들린다

아침 일찍 물고기가 운다

수문이 열리고

꼬리를 흔드는 물고기 한 마리

마른 허공에 강물을 풀어 놓고 첨벙 뛰어 오른다

 

수선집 문이 열리고 딸랑딸랑 파문이 인다

주인 보다 먼저 인사를 하는 미스 물고기

그녀의 반경은 10cm

쇠종에 시계추처럼 묶여 헤엄을 친다

노처녀로 늙은 주인 여자의 반경도 5m

여섯 평 가게에 묶여 미싱을 돌리는 미스 김

종일 페달을 밟고 달려도 늘 제자리다

 

어서 오세요 정말 멋져요 딱 맞아요

뻐끔뻐끔 그녀의 입에서 물방울이 쏟아진다

종일 그녀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손님이 뜸해지면

오래전 아가미에 가두어둔 강물소리에 젖어 추억에 잠긴다

 

지지난해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만난 물고기

어느 강물을 거슬러 올랐는지

비늘이 헐었다

쇠종에 매달려 제 몸으로 종을 치는 종지기

그 소리 맑고 구슬프다

 

누가 그녀를 저 곳에 매달았을까

몸값을 지불해도 저주는 풀리지 않는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고

나를 풀어달라고

물고기가 운다

수문을 열고 손님이 들어선다

미스 물고기, 이때닷!

힘껏 꼬리를 친다

 

 

 

 

 

옷걸이

 

 

 

줄 하나에 목을 매달고

왜 사는지도 모르는 물음표들이 걸려있다

 

그들이 믿는 건 뼈대의 힘

잠시 한눈 팔다가 행거에서 추락

가문 더럽힌 죄로 먼지떨이로 맞은 적도 있다

 

앙상한 뼈대는 가문의 수치

무언가 걸쳐야 산다.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붙잡아 널어야 한다

계절의 지친 어깨 받아 걸다가 그 무게에 휘청거려도

이대로 바닥으로 구를 순 없다

 

명품 걸치는 건 최대의 꿈

상류사회로 가는 지름길은 겉치레에 있다

속은 텅 비어도 겉은 번드르르

한 번도 제 인생을 살지 못한 그들은

타인의 얼굴로 산다

 

양복 한 벌이 서둘러 나가고

명품 모피코트가 외출한 헐렁한 행거

제 얼굴인양 거드름 피우고 우쭐대다가

당당했던 어깨가 허탈해지는 순간,

 

행거에 목을 매고 대롱대롱 목숨 연명하는 것들

본색이 드러났다

 

반으로 접혔던 지난겨울이 주름 잡힌 무릎을 탈탈 턴다

 

 

 

      

 

시소증후군

 

​   

그가 중심을 놓쳤다

균형을 잃고 세상을 놓쳤다

뿌리째 뽑혀

팍팍한 모래바람처럼 떠돌다

변두리 놀이터에 껌처럼 눌어붙어 있다

놀이터를 안방인 듯 꽤차고 앉아 있다

누구도, 등 떠밀지 못한다

이젠 소주병과 낡은 가방 하나가

그의 중심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갈 수 없는 저녁,

홀로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느라 속울음이다

자신의 언어를 찾지 못하고

독한 소주 냄새로도 영역표시를 할 수 없을 때

 

그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중심을 지키는 게 상책이라 믿는다

민원으로 각서를 몇 번이나 썼다는 그,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기우뚱 현기증을 호소한다

 

바람이 혀를 차고

구름이 늙은 부모를 기억해내는 동안

그가 바닥을 향해 눕는다

자꾸 소주병처럼 기울어진다

 

세상의 중심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다

중심이 너무 멀어 아득하다고 하다가

이내 눈빛이 흔들린다

끝내 중심이 되지 못하고

새벽마다 공사장 기초공사를 하며

실종된 중심을 현상수배 한다

 

 

 

 

슈퍼맨의 꿈

 

 

 

 

하늘대학 항공과 졸업생, 그는 추락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약발이 다 떨어진 슈퍼맨 4년 째 악몽에 시달린다 휘날리던 망토는 가시나무에 걸려 궤도 이탈, 배터리는 바닥이다 또 한 차례 사막의 모래바람이 몰려온다 무릎이 푹푹 빠진다 삼각팬티 한 장이 전부인 슈퍼맨, 단봉낙타 등에 빨대를 꽂아 연명한다

 

모래물결무늬 속에 바다가 숨어있다 죽은 물고기가 하늘로 튀어 오른다 감금당한 바다가 사라지던 날 키 큰 선인장이 앞치마를 두르고 이젠 안속아 붉은 눈으로 사막의 중심을 쏘아본다 미라가 사막을 벌컥벌컥 삼켜 버릴 거야 한 때 슈퍼맨을 지지하던 낙타가 짙은 안개를 변명처럼 게워낸다 붉은 여우도 길의 꼬리를 놓쳤다 사막을 폭식한 슈퍼맨이 달그락달그락 라면을 끓여 먹는다 퉁퉁 불은 달은 오래도록 차갑게 식었다

 

천하무적 슈퍼맨 모래언덕에 빠졌다 푸드득 조개무늬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숨어있던 나뭇잎 무늬도 팔랑팔랑 사라진다 모래바람 소리가 밤새 낙타의 등에 쌓인다 사막에서 건너온 뙤약볕, 미라의 몸에 균열이 생긴다 수북한 모래봉분 속으로 실종된 꿈이 덤덤하게 걸어 들어간다

 

무덤이 하나 더 늘었다 이제 아무도 슈퍼맨을 믿지 않는다 정보지 구인란을 훑어보는 슈퍼맨 몸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다 쿵! 침대 밑으로 백수건달 사내가 굴러 떨어진다

 

 

     

 

   

레밍 딜레마*

     

 

 

삶은 우리에게 미끼다

내가 죽어야 네가 산다

종족 이례(異例)

멈춘다는 것은 금기지

겁에 질려 헐떡이는 건 더 식상하지

내일 아침은 너무 늦어

더 늦기 전에 일제히 뛰어내려야 해

오래 참을 수 있다는 거짓말은

되려,

숨통을 조이지

 

비대해진 땅은 뒤뚱뒤뚱

막다른 길로 우릴 유인하지

믿기지 않지만

어젯밤 누군가 나의 등을 밀었어

드디어 해낸 거야

우리는 죽음을 번식 할 수 있는 거야.

 

사내에게 불하된 땅은 한 평도 없었다 세금 고지서도 갈 곳을 잃었는지 우편함을 떠나 사방에 뒹굴고 있다 후미진 골목 전봇대는 필사적으로 제 땅을 지키고 있다 구부정한 사내는 24시 편의점을 식탁으로 빌려 쓰곤 한다 누가 볼세라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마지막꼬리를 자르고 사라진 고시텔 모두가 귀향을 서두르던 어스름한 저녁, 사내의 마지막 끈은 사내의 숨통을 조여 왔다 더러는 과거로 돌아갔고 어지럼증을 앓는 사내는 빛을 거부한다 캄캄한 미래의 밝기를 조절하는 동안 불어터진 컵라면은 편의점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절대 백수가 아니라던 사내, 몇 달 째 방세가 밀렸는지 고시텔 구석에서 밀려났다 벼랑 끝에서 누군가 등 떠밀었다 어떤 이는 펄럭이다 떨어졌다고 하고 더러는 두 발을 디딜 수 없어 미끄러졌다고 한다 더는, 웃음을 번식할 수 없어 등 돌렸다 누구도 그를 미끼로 물지 않았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컵라면처럼 그는 버려졌다

 

그의 눈물은 드디어 번식을 시작했다

 

 

*데이비드 허친스저서

 

 

 

 

한 뼘

 

 

한 뼘만 뻗어!

그는 늘 말했다

곧 닿을 거라는 그 한 뼘

오래된 한 뼘

간신히 팔을 뻗으면

이봐, 방향이 틀렸잖아

 

한 뼘이라는

한 뼘에게 속고 속는다

그의 한 뼘과 나의 한 뼘 어쩌면,

평생 닿지 못할 거리인지도 모른다

 

한 뼘만,

한 뼘만,

간절히 두 팔을 휘저어보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그리운 것들은 떠나가고

소망하는 것들은 번번이 놓치고 만다

 

너무 먼 한 뼘

나는 한 뼘 밖에 서 있다

절망보다 한 수 위인 그,

완벽한 사기꾼이다

 

다가가면 그는

한 뼘 더 물러선다

단작스러운 그의 놀이에 중독된 것처럼

나는 늘 그에게로 치우친다

 

TV 위에 놓여진 좁은 화분 속에서

시끄러운 잡음과 전자파에 시달리면서도

한 뼘, 한 뼘

팔을 뻗어가던 선인장이 시들시들하다

자꾸 뿌리 쪽으로 몸을 기댄다

 

사회에서 한 뼘 멀어진 나,

소파에 뒹굴뒹굴 몸을 굴린다

TV는 채널을 찾지 못하고

초점 잃은 눈동자는 정보지 구인란 쪽으로 쏠린다

 

 

 

 

 

바람의 은어

 

 

 

 

바람이 불자

나무는 허공을 향해 무작위로 나뭇잎을 방생한다

겁이 많은 것들은 서로를 의지해 떨어진다

허공을 붙들려다 놓친 것들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비명으로 흩어진다

 

나무를 나무라 부르다가 나무의 언어를 바람이라고 쓴다

나뭇잎은 꼬리지느러미를 달고 허공의 아귀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탐지하려고 바닥으로 구른다

 

땅 위에 귀를 대고 비비는 것들이

경쟁하듯 바스락거린다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쏟아지자

행인의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호화로운 옷을 입은 몇몇은

눈에 띄어 책갈피에 갇혔다 더러는 바람의 등을 타고

홀연히 사라지고 하나하나 스러져 갔다

 

바람이 다녀갈 때마다 길을 몰라

그들은 크게 요동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자

바람이 흘리고 간 은어를 듣는다

 

몸이 썩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리고

땅에 스미면 뿌리에 당도한다는

 

 

 

       

 

박쥐

 

      

 

날개를 달고 싶었어요 신은 두 손을 지우고 그 자리에 날개를 달아주었지요 날개를 더듬어 보면 다섯 개의 손가락뼈가 만져져요

 

하늘도 땅도 아닌, 그 틈에서 배회했지요 반쪽짜리 날개를 달고 어둠을 틈타 날아온 이곳, 겨울이 오기 전 가난한 아비를 바꾸고 싶었지만 악성유전자는 그대로 유전되었어요 이제 그만 날지 못하는 날개를 반납하고 싶어요 초음파로 바깥세상을 살피는 두 귀는 불안해요 잠수함같이 깊이 가라앉아 밤을 기다려야 해요 빛은 제 눈을 멀게 하죠 제가 사는 곳엔 해는 뜨지 않아요 거꾸로 바라보는 세상, 내 피는 돌지 않아요 벼랑을 잡고 버티는 두 발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힘이 빠진 발목은 나뭇가지를 붙잡지 못해요 어둠이 서서히 나를 지우고 있어요

 

기계는 지치지 않아요 기계보다 빠르고 정확한 나는 잠을 반납했어요 밤새 찍어낸 날개는 다른 주인을 찾아 갔어요 하품을 하면 불량품이 나왔죠 나는 꿈속에서 이를 갈며 소리를 질렀어요 사라진 두 팔로 흐르는 땀을 닦았어요 삼백육십오일 월급을 받지 못한 나는 남아 있는 반쪽짜리 날개마저 잃어버렸어요 불법체류중인 세상을 저어갈 것은 날개가 아닌 두 손이에요

 

 

   

 

 

     

    

외로움의 면역체계

 

 

 

틈날 때마다 외로움을 수집하는 것은 나의 취미

 

외로움도 희석이 되면 물안개로 피어오른다

비 개이면 잠시 딴전 피다가 여우비처럼

스멀스멀 내 영혼의 발목을 적시기도 하는,

외로움은 나의 오래된 지병

 

할머니를 뒤지고

어머니를 뒤져 누대의 계보 따라가면

굵고 가는 빗방울처럼

외로움에도 두께가 있다

 

수집한 외로움은 몇 종이나 있는 거죠?

멸종 위기에 있는 희귀종이 궁금해요

부르면 네하고 대답하는 것도 있나요?

글쎄요

궁금하긴 마찬가지에요

 

어느 박사의 연구논문 중 외로움 잘 타는 사람일수록

면역항체가 줄어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외로움의 유전자는 돌연변이를 낳고

돌연변이는 또 다른 외로움을 낳는다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외로움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나의 몸에도 절망이 잠복중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하나의 허물을 지우고 두 개의 허물을 낳아요

꼬리를 잘라 만든 그물을 던져

바람의 머리를 잡을 거예요

 

얼굴 밑, 또 낯선 얼굴

나는 여러 겹 허물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혀끝이 구름을 맛보고 예민한 당신을 점쳐요

바람이 폭발하는 건, 나의 폭식 때문

둘넷다섯열스물...

구름을 통째로 마신 혀끝에는 독이 묻었어요

 

몸통을 삼킨 머리가 사라지고

잡히지 않는 미끈한 환상이 스르르

손가락을 빠져나가요

 

표정이 떨리는 건, 금단현상이죠

식도에 걸린 어둠의 덩어리를 삼키며

끈으로 목을 묶는 방법을 알고 싶었죠

내가 게워놓은 검은 배설물,

짙은 안개는 머리부터 먹어치우죠

견딜 수 없는 통증은 없죠

통증의 끝이 궁금한가요?

 

마취된 안개를 헤집으면

해산하지 못한 욕망의 비린내가 물컹거려요

또 한 겹, 나를 껴입어요

 

꼬리를 잘라, 기어이 머리를 살 거예요

 

 

 

* ‘엘리아 카잔감독의 영화제목

 

 

 

 

 

 

약력

 

* 2005시인정신등단.

* 10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수상.

* 웹월간[젊은시인들]편집장 역임

* 계간 시인정신편집기획위원

* 시집미스 물고기북인 외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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