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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서약식 외1편 / 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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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9-04

 

▲     © 시인뉴스 포엠





졸혼서약식

 

 

 

장시간 운전하는 속도는 따분하고 지루하다

 

신호등이

여기저기 주차된 감정들을 추스리고

그 날이 그 날 같은 지루함에 이끌려

식장으로 들어간다

 

남편과 아내란 규칙으로 채운 빗장

언젠가는 풀어야 하는 안전벨트

 

결혼을 졸업한다

 

두 사람이 차선 물고 입장한다

마주보고 내 탓이라며 빵빵 하는 사이

서약서를 읽어야 할 시간이 왔다

 

첫째, 기본적인 신호 지키며 만나고 헤어진다

둘째, 트집도 흉도 무리하게 귀담에 끼어들지 않는다

셋째, 너무 가까워져 위험선을 넘나들던 마음을 정리한다

넷째, 초보인 자녀가 안전운행 할 수 있도록 서로 보살핀다

서약서를 읽은 후

준비한 선물을 주고 받는다

빨간불에 막혀

그동안 가다서다 서다가다 고생 많았어요

시야를 멀리보고 신호등 없는 곳에서

차간거리 지키며 이제는 마음껏 달려봐요

무사고를 서로 빌어주며 악수하고 퇴장한다

하객들이 창문열고 손 흔들며 환호 한다

 

뚜렷한 개성이

각자의 설계도로로 운행하는 단꿈을 꾼다

 

새차가 보란 듯이 부릉부릉 부르릉 소리를 낸다






물고

 

 

 

어둡고 고요하단 말속에 움직임이 일렁인다

 

집게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지문이 묻어난다

 

동글동글 나무의 나이테를 빌려

손끝마다 하나 씩 붙여두었다

 

지문이 묻은 귀퉁이나 감각의 낱장

몸집이 커지면 좀 더 어룽거리고 싶고

손을 놓으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고 싶다

 

날아가거나 떨어지지 않는 무게

빨래줄에 걸어 널어놓은 몸통들

축 늘어져 바람에 몸을 말린다

 

집착에 사로잡힌 집게

몸들이 졸고 있는 사이에도

한 눈 팔지 않고 꽉 잡아주는 중심

 

어떤 무한대와 무한소 사이에

아무도 모르게 자라나는 내편

 

맨 뒷장부터 앞쪽으로 넘기다 보면

글자들 어지러히 흩어져

더는 넘길게 없어 책 밖으로 빠져나간 집게손가락

놓친 곳에서 생각이 지나가고 사라지고

 

이따금 서럽기도 했던

 

 

 

 

이옥 시인 약력

 

 

*2014년 월간 문학세계 등림
*한국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 문인협회 회원

*성동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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