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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억새 외1편 / 권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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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9-01

 

 

 

▲     © 시인뉴스 포엠



 

겨울억새

  

산 능선 위 노을이 그은 밑줄에

황혼의 여자가 누워

영문도 모른 채 백발을 날린다

저녁식사 준비 되었다 해도

떠먹여줄 바람을 기다리는 여자에게

오늘은 달맞이꽃, 도깨비바늘, 박주가리

박박 문질러서 죽을 끓인다

마지막으로 바람까지 분질러 넣으면

뽀글뽀글 어둠 너머로 끓는 죽

몰려온 방향도 모르는 허기는

늘 어둠 쪽에 앉아 입을 벌린다

입술 허옇게 마구 떠 넣으면

느슨해졌던 심장도 펄떡거린다

엷은 혀끝이 잘 차린 붉고 비리고 아픈 맛에

오래 길들여졌다가

위태롭게 붉은 밑줄로 더듬는 기억에서

한 시절이 내 속으로 들어왔다가

예고 없이 빠져나간 사랑의 맛을

백발 여자 떠올리는 것은 아닐지

시큼 씁쓸 텁텁에 닿은 혀가

일렁이듯 미동하는 저녁이다

 



 

문고리

 

 

밀리거나 당겨질 때마다

컹컹 짖는 문이 있다

바람 막기가 버거운 듯

덜렁거리는 혀도 달려 있다

돌개바람소리에 곤두세우는

귀도 걸려 있다 

떠올려지는 건 사막의 주점

물을 마시러 올 낙타가 그리울 뿐이다

늘어진 목줄로 둘러보는 주위는

문짝에 붙은 방울소리로 스산하다

목에 청동방울을 둘렀을 낙타와 함께

모래이랑에 반쯤 묻혀버린

나무의 닳은 지문을 읽는 일이란 

벽에 등을 기댄 채 비스듬히 누운

개 같은 눈의 몫이다

어느 골목쯤으로 발자국이 흘러가고 있는지

느긋한 몸짓 더한 모래의 깊이에는

사라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간만이 쓸쓸하다

   



권분자 시인

청송 진보 출생

월간문학 등단

저서- 너는 시원하지만 나는 불쾌해

수다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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