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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 외 1편 / 송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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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9-01

 

▲     © 시인뉴스 포엠



실타래 1

 

송연숙

 

 

식물들의 집착은 좁다

그 좁은 집착이

꽃을, 이파리를, 열매를 속인다

 

분갈이하려고 식물을 들어 올리면

하얀 뿌리들이 화분 모양으로 얽히고설켜 한 덩어리다

실타래 같은 뿌리의 한 생이란

속이고 또 속는 일이다

 

실의 끝을 물고 들어간 미로에서

화분은 이동하는 계절

반려伴侶하는 계절이다

 

공중에 뿌리를 들어 올리고

돌돌 감긴 제자리걸음을 들여다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고작, 조금 더 큰 계절로 계절을 옮겨주는 것

손바닥이 빨간 목장갑의 손금에서

흙을 털어 내는 것

나비가 없는 세상을 창가로 옮겨주고

어느 언덕쯤이라고

시냇물이 흐르는 양지쪽이라고

식물을 속이고

괜찮다, 괜찮다

꽃 피우라 독촉한다

 

이름을 많이 소유한 사람일수록

비좁은 사람일 것이다

뿌리가 뿌리의 발목을 감듯

잔뿌리 자르고 분갈이하듯

한 이름이 수많은 이름을 버리고 떠나갔다

작고 따뜻한 화()분에 담겨서

 

 

 

발소리들

 

 

어중간한 층에서 몇 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소리 감별사가 된다

발에 깃털을 단 고양이 두 마리와

리듬이 없는, 발소리가 사는 집

이 집엔 낯익기까지 한

위층의 발소리가 함께 산다

 

층수 잃고 떠도는 발소리가

피아노 소리로 들리고

잠결을 달려오는 심장 속엔

아직도 어린아이들 몇쯤

쿵쾅거리며 뛴다

 

나는 발소리에다 시이즈 붙이는 일을 해보기로 하는 것이다 165, 230, 265의 발소리부터 지름 5cm의 다족류 발소리까지 쿵쾅거리는 피의 보폭에 하나 둘 스티커를 붙이다 보면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눅눅한 발소리를 느낀다

 

물방울 같은 발가락을 쓰다듬으며

입맞춤 해주지 못한 발

꽃잎 같은 맨발의 발소리

시간과 공간의 층 사이 옮겨 다니며

얼굴 없는 교류를 하는 시간

 

태어나지 못한 발소리가

빗물의 보폭으로

침대 위를 뛰어 다닌다

 

 

  

 

 

 

송연숙

 

약력

춘천출생

강원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

2016 <시와표현> 등단

2019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9 국민일보 신춘문예 당선(밀알상)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

현재 <시와표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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