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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무덤 외1편 / 문 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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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8-30

 

▲     © 시인뉴스 포엠



 

무덤

 

 

어린 이별이 걸어갔네

 

뒤돌아보며 던진

그 말을 봉하여 불두화 그늘 아래 묻었네

 

오랜 시간 뒤

나무에 스며든 말 튀밥처럼 터지네

가지 끝에 숭얼숭얼 달리는 순백의 꽃숭어리

 

하얗게 봉인된 이별이 뚜벅뚜벅 걸어오네

 

무성영화 장면 같은 비밀의 화원

 

기나긴 회랑을 밀고 오는

첫 울음 같던 그 말을 게워 다시 새김질 하면

~

입 안 가득 환히 박하 향기가 나네

 

불두화 타래타래 피어날 때면 기억의 편린들이

눈처럼 내려

말무덤 뚜껑 열리고

 

완두콩 비린내 같은 그 말이 설핏 기척하며 일어서네

 

    

 

 

 

 

바나나 속이기

 

문 영 하

 


똑 같은 힘일 때는 좀 더 버티는 놈이 이기는 법,

아버지 늘 말씀하셨지

 

바나나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선 고리에 걸어두라고

나무에 매달린 줄 알고 천천히 익어간다고

 

일명 바나나 속이기인데

우리는 바나나를 속였고 아버지는 세상에 속아 허공을

움켜쥐곤 했다

 

아버지의 등에 업혀 오남매는 키가 한 뼘씩 자랐다

그의 마른 등에서는 젖은 휘파람 소리가 났다

 

고리 끝에 매달린 열매, 죽을힘으로 버티고 있다

바나나의 몸에 검버섯 같은 반점이 번진다

갈색으로 변한 열매, 아득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움켜쥔 아버지의 손이 아래로 떨어진다

바나나 껍질 위에서 아버지가 미끄러진다

옷걸이에 매달린 낡은 양복도 풀썩 주저앉는다

 

바나나처럼 허공의 링거에 영혼을 매달고

지상의 끝에 선

아버지 손이 내 손을 잡는다

 

 




문영하 시인 약력:

2015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청동거울이 있음

미네르바 시예술 아카데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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