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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겹의 숲 외1편 / 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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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8-13

 

▲     © 시인뉴스 Poem



몇 겹의 숲

 

 

오래전 숲을 밀고 들어갔을 때

붉은 숲을 북북 찢으며 직박구리가 날아올랐다

나무와 나무들이 지상의 과제를 수행하며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는 몸짓 가벼울 때였다

몇 겹의 오류를 벗어던지던 고양이 울음이 가늘어질 그때

청시닥나무와 복자기가 서로를 깊이 껴안았다는 것

검은 외투를 입은 고양이는 슬쩍 몸을 날려

오수의 햇볕과 울타리펜스 아래 얼룩말 무늬로 숨고

수묵화처럼 번지는 첩첩 그림자 나무 사이로

모든 풍경을 엿보는 불온한 눈초리는 흘깃거리고

온갖 것을 들여다보는 폐회로 텔레비전의 빈틈없는

시선을 끌어 모으던 뜨거운 체위였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참 좋은 때다 하면서

작약하던 그런 날이었다는 것이다

놀란 새가슴 깃털 흘리는 소리조차도

몇몇의 나무들은 겹겹이 둘러싸고 숨겨주었다는

오랜 숲의 곰실곰실한 미스터리였다는 것이다

살아 한번쯤은 몇 겹의 숲에 화양연화 한 편

비밀스럽게 묻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뎅그렁거리던 바람에게 들은 말이다

 




 

낌새



 

 

나무들의 아미가 붉어졌다

무성하던 수다가 한 입씩 떨어졌다

지난한 폭염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수다였다

견딘다는 것은 그다지 웅숭깊은가

바람의 동공은 깊어져 가벼운 수다에도 몸을 날렸다

너에겐 너무 가벼운 잎사귀

점점 어두워지고 더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것

한밤중 고양이 울음처럼 무거운 것이다

길고양이 울음을 굴리며 팔랑귀처럼 떠나는

길 위에 서서 스러지고 있을 흐느낌들

우두망찰 그 배후로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떠나는 길 모롱이에서 돌아보면 차마

성글어진 나무들의 아미에 입 맞추지 못하리라

 

손을 잡고 잠시 온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훗날 좋은 봄볕에 만나면 알아챌 수는 있을까

가까스로 알아채더라도 처음인 척 해야 하는 것일까

가을 숲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밤이다

구절초 향기 수런거리는 시월은 지워지는 중이다

 

 



 

진란 시인 약력: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2002년 계간주변인과 편집동인으로 작품 활동, 편집위원 편집장 역임

현재 계간문학과 사람편집인, 시집 혼자 노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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