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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너에게 외1편 / 허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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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8-13

 

▲     © 시인뉴스 Poem



소금이 너에게

허순행

 

 

 

4월 어느 날, 누군가 나를 가두고 사랑하겠다 했니라 봄이 막 분탕질을 끝냈을 무렵이었니라 해안에서 놀던 나를 끌어올려 작은 집에 가두었을 때, 그게 사랑이려니 했니라 처음에는 물방개며 달빛이며 별들이 와서 놀아 주어 그런대로 참을 만 했니라 바람과 햇살이 몸을 쓰다듬는 동안에도 떠나온 바다가 먼 발치에서 노래를 들려주었니라

사랑하겠다는 말은 잉걸불처럼 뜨거워서 내 몸은 바삭바삭 말라갔니라 밤도 검은 옷을 껴입은 채 부지런히 오겠다 했으나 바슬바슬 부서지기 시작한 몸을 식혀줄 수는 없었니라 승냥이 떼가 몸을 휘젓고 햇살이 뼛속을 송곳으로 찌르고 주리를 틀 듯 사지가 비틀리는 동안 나는 빌고 빌었니라 하늘이며 바람이며 날아가는 갈매기에게도 목숨을 부탁했더니라 마음에 날이 서고 더 많은 모서리가 생기자 나는 아예 눈을 감았더니라

그러던 어느 날, 햇살이 몸속 깊이 들어와 제 그림자를 드리웠을 때 내가 하얀 사리로 변해 있더니라 그제서야 내가 내 몸을 눈물겹게 우러러 보았니라

 

느티나무가 제 나이를 내려놓고 바람이 서너 번 더 골짜기를 내려온다 했으나 나는 눈보다 더 하얀 몸으로 당신에게 간다고 했더니라 그대의 등에 업혀 그대의 목숨 속으로 먼 길을 떠났더니라

 

 

 

 

 

     

 

 

밥 또는 법

 

 

 

밥이 음지로 들면 법이 된다

 

( ‘자와 어울리면 초록은 들판을 물들이고

이윽고 새들은 가을을 물고 온다)

 

가을이 징검다리를 건너오고 도랑물이 도란도란 말을 걸고 엄마는 하얗게 김이 오르는 밥을 상에 올린다 아버지가 누운 아랫목에서 검은 냄새가 나자 밥은 문득 법이 되었다 엄마의 법은 단단하고 어두워졌다 뜨거운 수렁을 건너야 했고 막막한 사막을 걸어야 했고 김이 서린 11월을 갈무리해야 했고 밥상 앞에 머리털이 허연 겨울을 앉혀야 했다

 

아침마다 고봉으로 자리 잡는 법 앞에서

엄마의 밥은 찬 손으로 허공을 닦았다

모음 가 따라오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늘 ㅏ와 ㅓ 사이에 걸터앉아 문 밖을 살폈다

 

 

 

 

 

 

 

 

허순행 시인 약력 :

충북 음성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1년 시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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