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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꽃 외9편 / 이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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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8-01

 

▲     © 시인뉴스 Poem



칡꽃

 

이진욱

 

 

 

첨탑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무모한 줄 모르고

고압에 닿을 때까지

사력을 다해 기어오른다

 

사랑을 위한 등정이라면

말리고 싶다

저긴, 너무 위험한 길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몇 볼트의 벼락이 필요할까

뿌리에서 멀어져

더 아찔한,

 

칡꽃

 

       

 

 

고봉(高捧)

    

이진욱 

 

 

 

일찍 고아가 돼 빈 몸으로 객지를 배회하며

뜬소문만 무성하던 사촌 형이 왔다

 

몸을 밑천으로 빌어먹어도 빈손이었던 형과

이장한 백부모(伯父母)의 산소로 함께 인사를 갔다

 

봉분 넘치도록 삐비꽃이 피었다

꽃에서 고슬고슬 익은 밥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고인이 된 뒤에도 백모(伯母)는 알았던 거다

남겨놓은 자식이 배곯을세라

밥을 고봉으로 담아놓고 기다린 것이다

 

어린 삐비꽃을 오랫동안 씹으며 형은 몰래 울음을 감추었다

적막함만 쌓이던 봉분에 뜨거운 배후가 생겼다

 

삐비꽃이 또 한 상 올라왔다

 

 

      

 

이월

 

이진욱 

 

 

 

바닥이 보일 때까지 얼굴을 파묻었다

이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서늘한 등을 짊어지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숟가락질 몇 번 하지 않아도 밑이 되는 그릇

살아가는 데 한 숟가락만큼 부족한 이월의 끝은 멀다

혼자 겪어내기 때문에 까마득한 달

 

겨우내 당신의 눈빛, 말에 차일 때 돌멩이처럼 맥없이 구르다 박혀 얼기도 했다

모질게 살았지만 폐 끼치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이월(移越)시키고 싶지 않은 이월이 다 가기 전에 그릇은 바닥났지만

불만을 품지 않았다

 

눈보라가 지나간 뒤 별빛을 가슴에 모아 두었다

 

아득한 당신이 오길 기다리며

동백꽃에 쌓인 눈을 쓸어 그릇을 씻었다

 

 

 

      

뒷짐

 

이진욱

 

 

 

밑천이던 밭 한 뙈기를 생면부지에 넘긴 뒤

궁핍으로 몇 해를 버티며

새벽 찬 밥술에 떠다니면서도

자존심만큼은 숙일 줄 몰랐다

 

뼈대 있는 집안에 뼈는 없고

내세울 건 뒷짐뿐이었다

그런 뒷짐을 열면 검불보다 야윈 허리와 검버섯 가득한 손만 있다

쥔 것 없이 살았지만 양심까진 버리지 않은

아버지의 눈시울은 밤하늘보다 검고 눈물은 바다보다 깊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위안이 되었던 날

대부분을 탕진했지만 놓을 수 없는 것이 남아

 

오랜 내력 같은 눈물을 배웠다

 

 

   

 

수탄장(愁嘆場)*

 

이진욱

 

 

 

흉함과 길함 사이 귀신도 피하려고 빌었다는 날

바닷물이 돌아가는 곳에 서 있던 섬사람

 

기척이라도 보일라치면 발길을 돌렸고

모자와 선글라스로 가리고 나타날 때도 농을 걸지 않았다

세 번 죽어야 겨우 죽을 수 있던 삶

어떻게든 지나친 적이 있다

 

유배처럼 흘러들어온 바다에 닻을 내리고 견디는 건

피붙이마저 잃을까 질기게 붙잡았던 두려움

닮은 구석이라곤 피밖에 남지 않았다

무지했기에 발목을 스치고 오던 바닷바람조차 피했다

바람을 등지고 죽도록 살던 섬사람을 한 번도 긍정하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다 위란 것도 모른 채

그들의 삶을 부정할 만큼 무례했던 적이 있다

 

 

 

 

*수탄장(愁嘆場): 감염자와 비감염자 간 만남의 장소. 소록도에 있다.

 

 

쌍화차에 보름달이 두 개나 뜨던 날

 

이진욱

 

 

 

벌교와 고흥을 잇던 27번 옛 지방도가

4차선으로 확장된 뒤

다시는 흙먼지가 일지 않았다.

울창했던 메타세쿼이아도 시름시름 사람들을 앓기 시작했다.

 

경운기는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소문보다 먼저 도착한 복덕방에는 외간여자들이 빼곡하게 들러 앉아 화투짝을 만졌다.

청년들은 밤늦도록 색싯집을 기웃거렸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쌍화차에 보름달이 두 개나 뜨던 날

당신 생에는 없던 거드름과 악수한 종백부 손이 종일 다방

레지 치마 속을 들락거렸고

군수보다 바쁜 이장 얼굴엔 개기름이 번들거렸다.

개발(開發)은 개발도 땀나게 할 만큼

누구나에게 기회가 되었지만

정작 섭섭하게 땅문서를 넘긴 아버지는 끝내 머리를 싸매

고 누웠고

팔자에도 없는 자책을 밤새 늘어놓았다.

 

팔 땅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들만 오래도록 입을 닫고 살았다.

침묵은 영원히 돈이 되지 않았다.

 

 

 

 

 

 

황천 간다

 

이진욱

 

 

 

황천의 주소지를 궁금해 한 적이 있다

어떤 이는 서둘러 갔고

또 어떤 이는 입구에서 주저하다 돌아왔고

생각보다 늦게 가기도 했고

또 누구는 죽어도 안 가려고 발버둥 쳤던 황천

 

사는 게 퍽퍽, 하냐고 누군가 옆구리를 찌를 때

황천에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언젠가 가야 할 곳이라면

꼭 한번 다녀오고 싶었던,

이승에는 없고 구천을 떠돈 뒤에나 만날 수 있다던

그 황천이

섬진강 근처 어디쯤에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황천은 멀었다

태양은 지루하도록 서서히 기울었다

버스는 하품보다 느리게 황톳길을 기고 있었다

벚꽃이 지는지 하루가 지는지

걸쭉한 농지거리에 아낙들은 꽃물이 들고

산이 산을 낳든 말든

강물이 강물을 낳든 말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숨결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노인은 연신 마른 지팡이에 호흡을 얹고 있었다

아아, 그때 알았다

황천 가는 길은

황혼보다 높고 깊은 마을로의 소풍이었음을

 

언젠가 꼭 한번 다녀오고 싶었던 황천(黃川)

무릉보다 가까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진욱

 

 

 

꽁무니에 붙어 졸졸 따라온 녀석

깊숙이 넣어도 고개를 쳐든다 곤혹스럽다 달래보고 도망가고 몸을 숨겨도 어느새 옆에 붙어 있다 가끔 밀치기도 하고 목을 조여 오기도 한다 발버둥 쳐도 떼어낼 수 없다 처음엔 주머니에 쏙 들어오던 녀석은 빠르게 몸집이 커졌다 통제가 안됐다 항상 눈을 부라렸다 달래면 잠시 잠잠하다가 또나타났다 폭력은 매우 합법적으로 이뤄졌고 공권력은 늘 멀리 있었다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내 곁에 앉아 서서히 목을조였다 점점 권력이 되어갔다 녀석의 존재 이유였다

 

날마다 싸움이 벌어지는 집이 늘어났다 어떤 사람은 옥상에서 떨어져 바닥이 되었고 물속으로 숨는 사람도 있었다 경계를 떠나는 이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장자리로 파고들었다 녀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뒷골목에선 죽여달라고 했고 실제 칼부림이 나기도 했다 녀석에 의해 지워지는 자들이 빠르게 늘었다 이유 없이 술에 취해 시비를 걸었다 매일 구인광고 신문을 뒤적였다 복권방에는 초점 잃은 눈동자들이 불을 켰다 그들의 철학은 한 방이었다 해는 항상 짧았고 월말은 서둘러 찾아왔다

나도 점점 맷집이 좋아졌다

 

 

 

 

 

 

 

면역력

 

이진욱

 

 

 

너에게서 멀어지려고

 

뒤란 감나무에서 덤으로 태양을 얻었고

부엌 앞에 놓인 우물은 몇 번의 펌프질에 울컥 그리움을

토했다

방에 붙어 있던 부적은 누군가의 따뜻한 배경이었다

 

도배를 하고 바람 소리 몇 구절을 들여놓았다

봄에는 밭을 얼갈이하고 호박 고추 상추를 심고

닭과 오리도 몇 마리 풀었다

문득 귀에 익은 발소리가 찾아오면

푸성귀 뜯어 한 상 내줄 요량이었다

 

너에게서 멀어지려고

 

 

    

  

 

똬리

 

이진욱

 

 

 

돼지 한 마리쯤 거뜬히 머리에 이고 섬섬한 몸으로 자드락길 십 리를 가던 엄마. 물동이를 이고 올 때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나는 우리 집에 사는 구렁이가 엄마를 지켜주는 거라 믿었다. 새참을 이고 논에 갈 때도 대파를 이고 새벽시장에 갈 때도 구렁이는 어김없이 엄마의 가마에 똬리를 틀었다. 그때마다 작달막하던 엄마의 키는 땅속으로 숨어들어 갔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똬리가 앉은 엄마의 정수리가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을 보고 나는 엄마가 허물을 벗는 줄 알았다.

 

  

 

  

 

무정

 

이진욱

 

 

 

남보다 먼 아버지였다.

단 한 번도 집 떠난 적 없지만 늘 밖이었던 아버지였다.

가진 것은 뒷짐뿐인

검불도 쥐지 못할 만큼 가벼운 아버지였다.

전부(全部)였으나 일부(一部)도 아니었던

세월만 필사하던 아버지였다.

그림자마저 점점 짧아져 희미해지던 아버지였다.

 

난생처음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여유가 되면 오십만 원만 빌려달라고, 엄마에게 보청기를 해줬으면 한다고, 너도 자식 키우느라 힘들 텐데 미안하다고, 가을쯤 갚는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깊고 깊은 달팽이관 속에서 헤매던 엄마였다. 뭔 말씀이냐고, 당장 보내드린다고, 더 필요하지 않으시냐고, 부자간에 뭘 갚느냐고, 부담 갖지 마시라고 했다. 수화기를 열 번은 더 들었다 놓았을 아버지의 무정한 손이 어깨위에 얹혀지는 듯했다.

 

달팽이관 속에서 달팽이가 울었다.

 

 

 

      

 

멸치가 왔다

 

이진욱

 

 

 

멸치가 왔다.

 

뱃고동을 물어 나르는 갈매기 떼가 멸치잡이 배를 끌고 선창으로 들어오면 어머니의 멸치잡이는 시작되었다. 땡볕 몇 짐을 짊어져야 겨우 한 줌 얻을 수 있던 멸치, 곧고 멀쩡한 놈은 없었지만 등이 휘어가는 것은 멸치만이 아니었다. 한 놈이라도 더 줍기 위해 어머니는 짜디짠 목소리로 멸치는 불렀다. 비린내와 비늘을 빼고 나면 남는 건 한숨과 주름뿐인 선창가에서 어머니 홀로 눈부신 물결이 되었다.

 

멸치는

나의 가장 큰 후견인이었다.

 

 

      

 

 

각주

 

이진욱

 

 

 

살아온 날이 수십 권 책이라며

글만 제대로 배웠다면 날밤을 새웠을 거라는 당신께

어떻게요? 라고

각주를 답니다

 

데설데설한 성격 따라 이날까지 온 것도 억울하고

남들 다 가는 동남아 여행은 관두더라도

쌍계사 벚꽃 구경도 못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린다며

큰아들 작은아들에게 수화기 너머 이야기 한 보따리 풀어

놓습니다

순풍순풍 자식 낳고 길러 놔도

서방 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 합니다

평생 울타리 밖도 못 나가보고 이렇게 죽는다며

또 한쪽 써내려 갑니다

 

아침나절에 나가 해가 꼭대기에 있는데

벌써 들어와 들들 볶는다고

마루에 앉아 구름 세던 영감님은

가지 말라는 경로당에 왜 자꾸 가느냐며 아옹다옹입니다

주말에 꽃구경 가자는 말에

묵은 책 한 권이 밝아집니다

 

그날 읽었던 각주는 검버섯이 쓴 자서전입니다

 

 

 

    

 

[ 약력 ]

 

- 이진욱

- 전남 고흥

- 2012시산맥등단

- 시집 눈물을 두고 왔다

- 2018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문학 분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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