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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魚湯외1편 / 이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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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7-31

 

▲     ©시인뉴스 Poem

 

 

魚湯

 

 

이향란

 

 

 

 

갑자기 비가 오다가 갑자기 눈으로 바뀌는 그런 봄날에 당신과 나는 인사동 네거리에서 처음 만나 점심을 했지요. 사골처럼 뽀얀 국물에 부릅뜬 민어의 흰 살점을 발라먹으면서 당신과 나는 낮술 한잔도 가볍게 곁들였지요. 처음이라는 생소함을 잊고 서로의 머나먼 고향바다를 견주어가며 파도로 출렁대다가 짭조름한 밴댕이젓에서 우연히 젓가락을 부딪쳤지요.

 

한잔 술에 당신의 얼굴은 불콰해지고 나는 되레 창백해질 때 창밖엔 후두둑 한 떼의 비바람이 스쳐갔지요. 나는 왠지 쫓기듯 말을 뱉고 당신은 그 말이 아까운 듯 재빠르게 주워 담는 사람. 그런 당신의 귀는 후박나무 잎 같았지요.

 

처음이라는 건 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마지막의 또 다른 말.

펄펄 끓던 뚝배기의 민어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무렵 당신은 당신으로 나는 나로 선명해지면서 탕보다는 지리라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서로의 고개를 끄덕였지요.

 

어느새 우리는 눈이 마주쳤지만 여전히 같은 세상 같은 골목의 식당에서 땀 흘리며 민어탕이나 시원하게 비워내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 이상을 넘지 못한 채 밥과 반찬을 깨끗이 싹싹 비워내고는 또다시 부딪힌 눈길 사이로 희미한 웃음만 간간이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당신과 나는 밋밋한 사람의 무리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사람의 물결이 우러나는 거리에서 지느러미처럼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더욱 담백해진 모습으로 우리는 각자

 

 

 

 

 

 

 

약속의 자세

 

     

이향란

 

 

 

 

약속을 했어. 손가락을 걸진 않았지만.

 

약속의 이목구비에 어울리는 옷을 고르고 설레는 마음을 그 옷 깊숙이 감췄어. 은밀해지도록. 괜찮아 데려가줘. 날 수도 있어. 구름을 모른 채 비로 쏟아질 것도 같아. 오후 내내. 내 목덜미를 잡아줘. 어깨와 실룩거리는 엉덩이의 힘을 빼줘. 겨드랑이는 왜 이렇게 근질거리는 거야. 입가의 웃음은 문턱에 걸려 넘어지곤 하는데도 재미있네. 허리는 꼿꼿해도 괜찮겠지? 아주 간만에 나는 나를 내보내는 거니까. 첩첩이 둘러싸인 내안의 나와 손을 잡고 다정히 걸을 거니까. 그래도 흘러넘치는 웃음은 자제해야겠어. 가벼워 보일지 모르니까. 기우뚱거리거나 미끄러질지도 모르니까. 햇빛이 손을 내밀어도 나는 캄캄한 그늘 속에서 서늘서늘 먼 곳을 바라볼 거야.

 

정말 오랜만이야. 약속을 했어. 휘날리는 머리카락 좀 바라봐줘. 윤기 흐르는 피부는 시간에 대한 값진 포장. 심장의 두근거림은 심정의 허밍. 역류하듯 손끝으로 번지는 피는 최초로 내 생을 거스르는, 아아 말할 수 없어.

 

등은 굽히지 않는 게 좋겠어. 꽃피는 계절로 마냥 나아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말끔하게 차려입은 약속 앞에서는 어떤 예의가 가장 상냥할까?

 

 

 

 

 

이향란 시인

 

2002안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슬픔의 속도,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 너라는 간극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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