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그녀와 프로이트 요법 외9편 / 김상미 시인

- 작게+ 크게

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7-22

 

▲     © 시인뉴스 Poem



그녀와 프로이트 요법

 

김상미

 

 

입술이 새빨간

그녀는

날마다 시달리는 환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사를 찾았다

 

프로이트 추종자인

그 의사는

모든 것에

성적(性的) 과잉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메타피직 운율로

계단을 오르고

마지막 계단에선

중력을 느꼈지만

 

의사는 프로이트에 의한, 프로이트를 위한

처방책을

그녀의 자궁 깊이

들이부었다

 

날마다 그녀는 성욕에 시달리고

햇빛 속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살만 보아도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어느 날

그녀는 진찰실문을 밀고 들어가

삽시간에

의사를 덮쳐버렸다

 

정말 예민한

프로이트 요법이었다

 

 

 

 

      

 

오후 세시

 

김상미

 

 

오후 세 시의 정적을 견딜 수 없다

오후 세 시가 되면 모든 것 속에서 내가 소음이 된다

로브 그리예의 소설을 읽고 있을 때처럼

의식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라 주변을 어지럽힌다

 

낮 속의 밤

똑 똑 똑

정적이 정적을 유혹하고

권태 혹은 반쯤은 절망을 닮은 멜로디가

문을 두드린다

그것 느끼는 사람은

무섭게 파고드는 오후 세 시의 적막을 견디지 못해

차를 끓인다

 

너 또한 그렇다

부주의로 허공 속에 찻잔을 떨어뜨린다 해도

순환의 날카로운 기습에 눌려

내면 깊이에서 원하는 대로

차를 마실 것이다

 

공약할 수도 훼손시킬 수도 없는

오후 세 시의 적막

누군가가 일어나 그 순간에 의탁시킨

의식의 후유증을 턴다

그러나 그건 제스처에 불과하다

오후 세 시는 지나간다

읽고 있던 책의 한 페이지를 덮을 때처럼

뚝딱 뚝딱 뚝딱……

그렇게 오후 세 시는 지나간다

 

정적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정적 또한 지나간다

흐르는 시간의 차임벨 소리에 놀라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건

우리 자신의 내부,

그 끝없는 적막의 두께뿐이다

 

 

- 1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세계사, 1993. 9) 중에서

 

 

 

 

 

    

 

파랑새

김상미

 

 

 

나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내 청춘의 중간 지점에 나무관으로 걸려 있습니다 아직도 나는 나무관을 따뜻한 지하로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모르는 척 지나갔습니다 끙, , , 나는 나무관을 끌어내리는 데 내 청춘을 다 소비했습니다 물빛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뚝, , , 나무관을 적실 때마다 나무관 위엔 붉은 꽃들이 피고 붉은 꽃들이 졌습니다 내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고 나는 내 삶 전체를 흔드는 아버지의 나무관 때문에 자꾸만 끝이 뾰족해졌습니다 끝이 뾰족한 것은 모두 죄다, 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모르는 척 지나갔습니다 너무나도 끝이 뾰족해진 나는 어깨 위의 나무관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관에 뚫린 구멍이 아주 커다란 구멍이 되었을 때, 그 구멍 속에서 새 한 마리 날아올랐습니다 파랑새, 나는 것은 모두 죄다, 끝내 아버지는 따뜻한 지하에 내려서지 못하고 추운 하늘로 하늘로 날아올라갔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구멍 뚫린 죄의 얼룩만 남은 나무관 곁에서 이제 홀로, 홀로 노래해야 합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질투


김상미

 

 

옆집 작은 꽃밭의 채송화를 보세요

저리도 쬐그만 웃음들로 가득 찬

저리도 자유로운 흔들림

맑은 전율들을

 

내 속에 있는 기쁨도

내 속에 있는 슬픔도

 

태양 아래 그냥 내버려두면

 

저렇듯 소박한 한 덩어리 작품이 될까요?

저렇듯 싱그러운 생 자체가 될까요?

 

 

 

2시집 검은, 소나기떼(세계사, 1997. 5) 중에서

 

 

 

      

 

 

 

 

가버린 세계

김상미

 

 

그는 나와 다른 장소에 산다

나와 다른 장소에서 글을 쓰고 글을 읽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느끼고 배설한다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내가 열어놓은 창밖

외로운 나무에 물을 주고

꽃 하나 지면 또 꽃 하나 심는다

어떤 유정도 어떤 무정도 온전히 그대로 빠져나갈 수 있게

스스로 밧줄이 되어 나를 묶지도 않고

내가 켜 놓은 촛불 속을 빙글빙글 돌지도 않는다

그는 나와 다른 장소에서 내 얼굴에 불 지르고

그 재로 자신의 얼굴을 만든다

세상이 버린 시간의 꽃잎들은 모두 다 그의 얼굴이다

내가 내 속에서 외치는 땀과 공포의 냄새는

모두 다 그의 향기이다

그는 종이를 통해 내게로 온다

철저히 삶으로부터 분리된 그 장소에서

나는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어둡고 슬픈 자주색 꽃들 사이에 핀

붉은 딸기를 딴다

꺾여진 꽃들은 이제 더 이상 나의 상처가 아니다

그는 나와 다른 장소에 산다

나와 다른 장소에서 쓴 사람이 없는 글을 읽고 글을 쓴다

 

그는 언제나 삶을 먹는 자이고

나는 언제나 죽음을 먹는 자이다

 

 

 

 

      

 

함정 속의 함정

김상미

 

 

갑자기 유년의 뜨락이 그리워져 앨범을 뒤지는 건 함정입니다.

지나간 시간에 새 옷을 입혀 함께 외출하는 것도 함정입니다.

책꽂이에 꽂힌 당신의 시집을 빼내 읽지도 않고 다시 꽂는 것도 함정입니다.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에 마음이 울컥해져 창문을 여는 것도 함정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실망했다고 말할 때마다 먹은 나이를 게워내는 것도 함정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읽으면서도 모르는 척 침묵하는 것도 함정입니다.

들어줄 귀가 없고, 보아줄 눈이 없고, 품어줄 가슴이 없다면 아무도 사귀지 마십시오.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함정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당신의 정신적 고통은 결코 함께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슬픔만을 조금 나눠 가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보다 더 많은 걸 요구하는 건 함정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도 함정입니다.

함정인 줄 알면서 그곳에 아낌없이 뇌를 빠뜨리는 것도 함정입니다.

함정들로 가득 찬 당신 머리 속 서재에 앉아 좌절한 손으로 쓰는 사랑과 미움, 파멸의 또한 함정입니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그 꽃잎 위에 앉아 있습니다.

함정! 그 외 달리 무엇을 꽃다운 인생이라 부르겠습니까?

천변지이(天變地異)가 모두 그 꽃잎 하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햇볕 아래 서 있으면

 

김상미

 

 

 

 

햇볕 아래 서 있으면 세상과 내가 너무 닮아 보인다 투명해 보인다 숨기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진다 미세한 실핏줄까지 다 보인다 세상이 내게 약속하고 내가 세상에게 약속한 희망의 작은 숨소리까지 들린다

 

햇볕 아래 서 있으면 나는 동물이 되고 나무가 된다 동물처럼 움직이고 싶어 하는 내 안의 나를 느낀다 햇볕을 끌어당겨 나무를 배고, 호랑이 노루 사슴 토끼를 낳는 나를 느낀다 온몸에 꽃이 피는 걸 느낀다

 

햇볕 아래서 있으면 빛의 밭고랑을 뛰어넘어 내게로 오는 네가 ㅗ인다 빛에 둘러싸여 하얗게 빛나는 네 두 발, 잎은 더욱 푸르고 열매는 더욱 단단해져 네 몸에 기대 우는, 환한 내가 보인다

 

마셔라, 더 마셔라, 온몸이 햇볕으로 가득 찰 때까지나는 마시고 마신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허기지는 햇볕, 마시면 마실수록 꼬르륵, 꼬르륵, 배가 더 고파지는 햇볕

 

햇볕 아래 서 있으면 지나가는 기러기, 철새 떼의 비행들이 얼마나 내 시선을 받고 싶어 했는지얼마나 내게 말을 걸고 싶어 했는지내 마음이 얼마나 햇볕에 배고파했는지

 

햇볕 아래 서 있으면 비로소 내가 딛고 온 세월이 내가 숨 쉰 공기였음을, 내가 밟고 지나온 지도였음을, 뜨거운 눈물 위에 세워진 한 채 집이었음을, 햇볕 한 점 한 점이 다 내 마음이었음을

 

두 다리, 두 주먹에 힘 꽉 주고 햇볕 아래 서 있으면

 

 

- 3시집 잡히지 않는 나비(천년의시작, 2003. 4) 중에서

 

 

 

 

 

 

시각의 문제

 

김상미

 

 

 

 

이 거리가 아프다

 

끼리끼리 놀고 끼리끼리 먹고 끼리끼리 웃어대고 끼리끼리 잠자는

제대로 눈물도 나지 않고 분노도 일어나지 않고 감동도 되지 않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뼈들이 줄줄이 줄서기만 하는

 

뇌세포는 췌장세포를 좋아하지 않고

표피세포는 진피세포를 끊임없이 불신하는 데도

아까운 5리터의 피

줄서기에 다 쏟아 붓고 있는

 

미쳐서 환장한 갱스터 한 명 없고

사랑에 실오라기 하나 없이 덤벼드는

눈먼 방탕 하나 없는

 

가증스런 연명(延命)만이 판치는

야비한 이 거리

 

이 거리가 정말 아프다

 

노회한 조련사들만 우글우글

빛나는 미래로, 미래로

발기불능 자식들을 품에 안고 가는

 

기름칠한 넓적다리 같은 이 거리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점점 더 모른 체하고

질겅질겅 껌만 씹어대는 세계화를 찬양하며

스스로 죽어가는 어중간한 이들

 

어떤 게 좋은 삶이냐고 묻는 아이 하나 없이

거대한 세계 속으로 사그라지는 석양

아무리 잘 지내도 보름달은 결코 뜨지 않을

킬킬대는 지옥의 서문 같은 이 거리

 

날마다 비탄의 발길로 차고 또 차올려도

거짓말같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웃고 있는

영원한 일인칭

 

이 거리가 아프다

정말 아프다

 

 

  

 

 

똥파리*

김상미

 

 

 

영화 똥파리를 보았다. 똥파리속에는 시발놈아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보통 영화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훨씬 급이 높고 비장하다. 지랄 맞게 울리고 끈질기게 피 흘리는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아무도 없는 강가에 가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시발놈아를 스무 번쯤 소리쳐 불렀다. 그랬더니 내 가슴 안 피딱지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겁 많은 똥파리들이 화들짝 놀라 모두 후두둑 강물 위로 떨어졌다. 시발놈들!

 

 

* 양익준 감독의 영화

 

 

  

 

 

 

꽃밭에서 쓴 편지

김상미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대가 떠난 뒤 나는 꽃들과 친해졌답니다. 그대가 좋아했던 꽃들. 그 꽃들과 사귀며 하루하루 새 꿈을 개발해내고 있답니다.

 

그대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안개꽃이었나요? 영원한 사랑. 그 꽃으로 그대는 나를 유혹하고 나를 버렸지요. 꽃밭 가득 그 꽃들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요. 깊이를 잴 수 없는 꽃들의 욕망은 그 자체가 울부짖는 색깔 같아 그대 없이도 나는 그 꽃들을 숨 막히게 안고 숨 막히게 그 향기를 맡아요.

 

이제 엉겅퀴처럼 상심한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에요. 나는 하루하루 화해의 개암나무 잎에 나를 문지르며 베고니아처럼 신중하게 아이비처럼 지조 있게 매일 밤 캐모마일 차를 마시며 역경 속의 에너지를 키우고 있답니다.

 

그러니 늘 버림받아 우는 매발톱 꽃씨 따위는 이제 보내지 말아요.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진달래처럼 짧고 연약한 열정에 매달려 쐐기풀처럼 잔인하게 시들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옛사랑, 그대를 위해 행운목 한 그루는 보내드릴게요. 애석하게도 그대가 좋아했던 달맞이꽃은 모두 시들어 버렸어요. 깊은 밤에만 피는 노랗고 변덕스런 꽃. 봉선화처럼 성급하게 수국처럼 냉정하게 나를 떠난 그대처럼 그 꽃들은 모두 바람 부는 벌판에 내던져 버릴래요.

 

하지만 그대가 선물한 백석 시집 갈피에 넣어두었던 제비꽃은 내가 가질게요. 아주 오랫동안 보고 또 본 꽃이라 말이 통할 정도로 친해졌거든요. 버릴 수 없는 내 일부분이 되어 버렸거든요.

 

나는 이제 꽃들이 발산하는 생명력 없이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그립지가 않아요. 꽃잎 하나하나가 내게 상처를 주어도 그 상처 위에 오래 앉아 있으면 꽃잎 하나하나가 다시 나를 치료해 줘요.

 

그러니 잘 가요, 내 사랑. 내 사랑이 앞으로도 계속 제비꽃에 빠져 있을지, 패랭이꽃에 가 머물지, 아카시아 꽃처럼 비밀스런 사랑을 탐할지, 아몬드 꽃처럼 무분별한 사랑에 빠질지그건 아무도 몰라요. 나도 몰라요.

 

그렇지만 꽃들은 많은 걸 잊게 해주고 또한 많은 걸 떠올리게 해주고, 두려움 없이 즐겁게 많은 걸 기다리게도 해줘요. 사랑하는 만큼 빠지게 하고, 더 많이 보이고, 볼 수 있게 해줘요. 파닥파닥 상상력이 뒤쫓아 다니는 어린 아이의 발자국처럼!

 

 

- 4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문학동네, 2017. 4) 중에서

 

 

 

 

 

 

    

 

약력

 

김상미: 부산 출생, 1990작가세계여름호로 등단,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산문집으로는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박인환 문학상, 시와표현 작품상, 지리산문학상, 전봉건문학상 수상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시인뉴스 포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