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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劍)1 외1 / 이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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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7-16

 

▲     © 시인뉴스 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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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밤

 

먹구름이 초승달을 지나간다

봐라, 한밤의 구름이

달을 어떻게 재련(再鍊)하는지

한 뭉치 달덩이를 늘려

보름까지 늘려 가는지

서슬 퍼런 빛이

어떻게 서쪽으로 닳아 가는지

 

우주의 미아로 떠돌던 세월에

달이 굴러 들어가는 순간

 

불과 물에 넣어

수만 번 두들겨 맞고

혼절한 끝에

겨우 금강석처럼 단단해진 체질

 

번갯불 번쩍하는 순간

초승달이 구름의 목을 지났다

 

후드득,

세상에서 제일 밝은 빗줄기가

뚝뚝 떨어진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가을

 

 

 

속담 같은 저녁이다

맨드라미들은 닭장 주변에서 꾸벅꾸벅 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성(集成),

몇 채의 집들은 늙은 닭처럼 질기다

한쪽으로 무너진 행랑채는 그대로

무너진 가옥의 기둥이다

자포자기의 든든함이다

저녁 어스름이 전기요금 고지서에서

어정쩡히 잔돈푼으로 발현되고

형광등은 박힌 어둠을 일순간 빼낸다

자가발전, 이제 막 붉어지기 시작한 감나무는

환한 대낮에도 불을 켜고

파란 오후는 여름을 끝으로 시든다

 

한낮의 지구가 굴러온 각호지* 마을

집집마다 박혀 있던 달이 쑥 빠져

텅 빈 논배미 위에서 환하다

굴러온 돌이 빠져나온 자리도

굴러온 돌이 빼낸, 박혀 있던 돌의 자리도

자잘한 달의 기슭이다

열 달이 어미 소 뱃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송아지가 달에게 자리를 내주고, 쏙 빠져나왔다

여름 햇살이 여려지자

누런 벼들이 논을 달에게 넘기고, 떠나갔다

한 마을에서 오래 살면

달이 굴러 온 곳곳을 눈 감고도

환히 알 수 있다

 

 

*각호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흥리 각호지(용문)

 

 

 

 

 

이세기 시인 약력

천안 출생

2016년 계간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달의 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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