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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의 잠 외9편 / 조향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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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7-03

 

▲     © 시인뉴스 Poem



사마귀의 잠

 

 

 

나는 당신을

뜯어 먹고 싶어집니다

뜯어 먹다가 배가 불러지면 자고 싶어집니다

 

당신이 부드러운 식빵일 때

 

사마귀의 강한 턱과 큰 눈은 잠시

잊어도 좋습니다

날카로운 앞발 톱니를 생각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는 당신을 뜯어 먹으며 행복하고

당신은 나에게 뜯어 먹히며 행복해 합니다

 

부드러운 식빵은

죄입니다

 

 

 

 

 

 

 

 

 

 

 

 

 

 

 

 

 

 

 

 

 

 

 

이파리 이야기

 

 

 

 

배추김치이파리에 청개구리 한 마리 싸서

산채로 꿀꺽 삼켰다

 

그 뒤,

나는 모른다

 

산으로 가라하면 냇가로 가고

냇가로 가라하면 산으로 간 청개구리

 

이파리는 청개구리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달맞이 꽃

 

 

 

 

버리기 위해 길가에 앉았어도

꽃은 핍니다

잊을 줄 아는 꽃이 그리운 날

발작하는 백일홍도 넋 잃은 수양버들도

안개처럼 자욱합니다

길을 따라 또 꽃은 핍니다

아이를 등에 업고 걸리고

벽보를 읽어가며

해가 저물도록 걸었습니다

손 안에 입김을 모으던 아이

버릴 곳을 찾아 또 꽃다발을 만듭니다

하나 둘 설움의 색깔이 화려할수록

꽃다발 화려합니다

어딘가 닿을 그 곳에 보낼 꽃다발

오늘도 나는 여기가 어딘지 모릅니다

 

 

 

 

 

 

 

 

 

 

 

 

 

 

 

 

 

 

달빛

 

 

 

 

텅 빈 길 돌아옵니다

달빛이 나를 불러 세웁니다

뒤 돌아 봅니다

이팝나무 그림자가 흔들립니다

혼잣말에 대답 합니다

아침에 벗어놓은 옷 그대로 있습니다

마시던 물 잔도 그대로 있습니다

꽃병을 들어다 봅니다

목이 잘린 것들입니다

절망은 속이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달빛이 따라와서 꽃을 봅니다

희미한 발자국을 봅니다

발자국이 발자국을 찍고 갑니다

허공으로 찍고 갑니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맹약국略史

 

 

 

 

호탄동이 범골일 때

약국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약국을 맹약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약국 선생님은 딸기농사에 딸뿐인 우리 집을

딸기집이라 부르고

보리차 처방 약봉지에 딸기집이라 썼습니다

 

끓는 물에 보리차 한줌 집어넣으면

보리알이

생각에 잠기다가 깜짝 놀라

물 위로 튀어 오르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면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나는 오늘 감기몸살을 앓습니다

감기는

보리차가 그리워서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끓는 물에 보리차 한줌 집어넣으면

보리알이

생각에 잠기다가 깜짝 놀라

물 위로 튀어오릅니다

 

같은 동작을 왜 하는지 나는 잘 모릅니다

이맘때 쯤

맹약국 화단 다알리아가 생각납니다

 

 

 

 

 

 

 

 

 

 

달리는 도배사

 

 

 

 

갈기를 날리는 김씨는 도배사

손가락 하나 톡 튕겨

꽃잎이 벙그러지는 벽지를 고른다

오렌지 잔이 엎어지면 노을이 되고

노을빛 하늘거리는 금붕어꼬리

그녀의 원피스자락이 되는 벽지를 고른다

벽지 본향은 초원이다

풀물 드는 풀밭에 앉아 오늘도 편자를 간다

역마살 낀 빗자루 쓱쓱 문지르면

마을이 생겨나고 강물이 생겨나고

길이 생겨난다

먼지 뽀얀 광야를 내달리고픈

김씨는 벽지 도배사

숨 턱턱 막히도록 달리는 길은 언제나 벽

좁고 긴 걸상 위로 잽싸게 굴러 일어서는

똑딱 칼잡이의 삶

똑딱, 칼끝을 분지르고 단숨에

손가락 사이로 벽과 벽 하늘과 하늘 경계를 긋고

벽에 귀를 대면 들리는 소리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단춧구멍을 위한 주기도문

 

 

 

 

삼십 여년 단춧구멍만 치던 미싱입니다

뛰던 노루발 보폭과 바늘 끝에 생겨나던 단춧구멍이

세상 전부입니다

노루발 앞에 단추 하나 주워 키를 재던 눈금과

토하던 기침소리 쓸어 담던 날들이

쪽가위에 잘리고 한 땀 한 땀 기운 날들입니다

축축한 하루 아무렇지 않게 잘라버리던 가위도

북실에 딸려 나오는 질긴 그것들과 섞여

단춧구멍에 모여 살았습니다 그 곳은

조바심이 목에 걸린 바늘 끝이었습니다

 

오로지 바늘 끝으로 서 있던 미싱은

단춧구멍 없는 옷을 보지 못했습니다

노루발이 앞으로 뛰다가 뒤로 뛰다가 만들어진 단춧구멍

단추를 꼬시어 입을 꾹 다문 채 떠났습니다 간혹

단춧구멍 실이 풀리면 드러난 상처를 다시 기우려고

기도문을 외우던 미싱입니다

잘 우는 옷감에게 용기를 주시옵고

단추를 채우면 반듯한 옷이 되게 하시옵고

슬픔을 농담으로 바꿀 줄 아는 노루발이 되게 하시옵고 아멘

 

미싱은 단추 달린 옷을 입을 수 없었습니다

단춧구멍만 치는 미싱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춧구멍을 칩니다 덮개를 만듭니다

노루발도 북실도 가위도 서랍에 넣습니다

이미 어두워져버린 국제시장 밤입니다

 

 

 

 

 

 

 

 

 

피랑 까치집

 

 

 

 

바닷가 마을

꼭대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집

가지를 물어다 세우던 기둥

구름과 지푸라기 모인 신성한 집

해와 달이 자주 찾던 산비탈 길

 

넘어지지 않으려는 새들의 밤낮으로

피랑길을 등에 업은 지붕 밑에

짠 것들을 흘리며 끌어 올리던 바닷물

바지락 소리로 입 벌리던 새끼와

고단한 지붕이 비탈길에 엎어져 버티는 동안

풀벌레소리로 울던 것들을 달래고

아침 바다가 열리던 집

 

지붕 위에 길을 이고 있는 피랑 까치집

 

겨울이 오면

나뭇가지 골목길에 부딪히던 기침소리

아이들을 불러들이던 소리 개를 부르던 소리

뜯겨진 그물을 깁고 몰려가던 물고기를

아득히 바라보던 까치집

 

몇 개의 잔털과 흰 똥

빈 물탱크 때 묻은 노모의 문턱

그리운 둥지

 

 

 

 

 

 

 

 

 

 

토분

 

 

 

 

슬레이트 개집 위에 앉아 있었다

토분

 

한줌의 흙만 있었어도

키 작은 채송화 한 송이는 피울 수 있었는데

달빛을 마셔도 휘청거렸다

환삼덩굴 밑에서 나온 부연 꽃가루들이

꽃 환영처럼 날아다녔다

 

빗물이 슬레이트를 칠 때마다

토분

외로움을 덧대어 입고 기다렸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된다

달빛을 마시며 밤을 견딘다

 

, 하고 입을 벌린 채 곧 따라 나설 것이다

 

 

 

 

 

 

 

 

 

 

 

 

 

 

 

 

남강

 

 

 

 

지리산 명주실

올올이 살 섞는 소리

우는지 웃는지

불갑사 논개문양 구겨지는 소리

 

손가락 사이로 걸리지 않는 색

 

無量水水水 스스

수수수 스스

수수 스스

 

 

 

 

약력

 

조향옥 : 경남 진주 출생

2011시와 경계로 등단

2016년 시집훔친달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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