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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외9편 / 진순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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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7-01

 

 

 

 

▲     ©시인뉴스 Poem

 

 

 

 

 

 

가벼워

높이 날수록

바람결 꿈입니다

 

외로워

우는 삶도

목청 맑은 노래입니다

 

가슴에

낮달을 품는

그 사랑

허공입니다

 

 

    

 

 

 

못을 품다

 

 

 

본디부터 나는 어미 가슴에 박힌 옹이

깨어나라, 깨어나라, 간절한 기도처럼

정점을 곧게 내리친 서슬 푸른 자존 하나

 

애당초 어미에게 시린 슬픔은 아닌 것이

끝끝내 아뜩한 벼랑 절망도 아닌 것이

먹먹한 말없음표로 가슴 치는 진눈깨비

 

닿지 않는 삶은 꽃 핌과 꽃 짐 그예 티끌

끊어라, 끊어라, 피 뜨거운 그리움의 죄

허울에 못을 친다 욕망에 못 친다

 

본디부터 나는 아비 가슴에 박힌 상처

시의 서러움을 징소리로 울음 울 때

눈물에 녹슬지 않는 견고한 목숨 하나

 

 

      

 

 

 

워낭 저물 무렵

 

 

 

파장시장 난전에 펼친 상추 열무 풋고추

 

허리 굽은 백발 할머니 투박한 손으로

 

어머니 넉넉한 마음 덤까지 얹어준다

 

한자리 쪼그려 앉아 팔다 남은 열무 석 단

 

해질녘 떨이할 때 손주들 눈에 밟혀

 

고된 몸 참참 면벽을 살아낸 긴 그림자

 

삭신 쑤셔 허리 펴면 천근만근 삶의 무게

 

멍에 얹은 더딘 걸음 뒷모습에 워낭이 울고

 

노을빛 공양 올리는 골진 이마 되우 붉다

 

 

 

  

 

 

꽃비 속에서

 

 

 

봄 꽃잎

하르르 하르르

무수히 날다

 

바람 따라 속절없이

하늘 높이 오르네

 

사는 것

허공 딛는 것

생은 잠깐 지는 것

 

 

 

 

      

 

 

 

박하꽃 수수꽃다리 가득하던 내 고향

어릴 적 옛집은 온데 간데 흔적 없이

마침내 텃밭까지도 수인선 전철이 들어섰다

 

온 동네 식수가 되어 준 뒤란 우물

외로울 때 우물 허공 울리던 낭랑한 노래

봄밤엔 소쩍새 울어 별빛이 더 푸르렀다

 

사남매 옹기종기 모여 잠자던 안방도

옹솥에 불 지펴 수제비 끓이던 부엌도

고향은 이제 낯선 길, 긴 철길이 되었다

 

 

 

 

   

 

 

고무신

 

 

 

1.

그때는 말 못 했네 시집살이 어린 새댁

마음 닦듯 시어머니 고무신 희게 닦아

댓돌에 올려놓으면 하얀 분꽃이 피어났네

 

2.

친정 진열장에 모셔놓은 조카 꽃고무신

걸음마 한 발짝에 손뼉 웃음 풍선이 날고

그 풍경 흑백사진이 밑줄 친 생을 당기네

 

3.

서슬 퍼렇던 시절도 아프면서 바래지고

젖살 뽀얀 조카도 흐르는 시간의 여울

어머니 흰 고무신만 섬이 되어 멈춰 섰네

 

 

 

 

      

 

 

둥그런 잠의 꿈

 

 

 

해질녘 무료급식 하루 한 끼 때우고

포장박스 간신히 비집고 들어 몸 누인다

겹겹이 옷 껴입어도 섣달 밤 손발이 언다

 

한파를 견딜 수 있는 건 그나마 알콜 농도

몸처럼 찬 바닥에 나뒹구는 소주병들

빚더미 쌓여만 가듯 삶의 무게 짓누른다

 

뿔뿔이 흩어져도 빚 걱정 끼니 걱정

우린 언제 따뜻한 밥상에 모여 앉을까

죽어도 눈감지 못할 사랑하는 피붙이들

 

어머니 배 속 태아처럼 한껏 웅크린 채

둥그런 잠, 얕은 꿈조차 발이 시려오는

새봄은 아직도 멀다 눈썹 끝에 눈발 날린다

 

 

 

 

 

     

 

얼음 소통

 

 

 

한 마리 은빛 빙어 얼음 혀를 핥는다

찰나에 볼 닿을 뻔, 온몸 소스라친다

촘촘한 얼음 뼈마디 속울음 깊어진다

 

소리 내 울 수 없는 캄캄한 언어들이

가슴 깊이 무덤을 파고 들어간 이름이

이 우주 얼음에 갇혀 내내 소식불통이다

 

그토록 기다린 안부 하얀 눈꽃 피운 날

푸른 정맥 돌듯 새로운 물결이 온다*

감성은 살이 베인다, 심장이 마구 뛴다

 

낯선 미래 커튼 열듯 서서히 열린다

투명한 속살 환히 뵈는 모세혈관 따라

마음속 쩡! 결빙 가른다, 날 선 햇살 꽂힌다

 

 

 

 

* 미래학자 최윤식, 최현식의 저서 4의 물결이 온다에서 인용.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떠나는 이 앞에선 그저 죄만 같습니다

시간은 눈물 겯고 계절은 절룩거리며

여윈 채 새로 눈 뜸이 아픔일줄 몰랐습니다

 

산다는 건 난만히 꽃 진 자리 끌어안는 일

그리움 정점에서 맑은 멧새 울음 찍는 일

사무쳐 가슴 도려낼 줄 정녕코 몰랐습니다

 

산기슭 거북바위에 곤줄박이 쫑긋댈 때

고향 우물 두레박에 싸리울 시래기에

서설은 아무 일 없듯 가만가만 쌓입니다

 

보낼 사람 보내야 새롭게 허울을 벗는

매운 한파 녹이듯 절명시 활활 타올라

여기는 잠시 소풍 온 곳,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유모차, 설산을 오르다

 

 

 

등 굽은 할머니 흰 수건 정갈히 쓰고

오늘은 운이 좋아

키 높이로 쌓인 폐지

건널목

앞이 안 보여 연신 고개 갸웃 댄다

 

손수레도 아닌 유모차 한 짐 가득 팔아봤자

고작 폐지 1kg80

느루 먹다 지친 허기

해종일

추운 거리 헤맨 뼈마디가 삐걱인다

 

숨이 턱에 닿아도 또 넘어야 할 고빗길

팔십 독거는 지는 쪽으로

저어하며 가는데

유모차

부리지 못한 생, 그 설산을 오른다

 

 

 

 

 

 

 

   

진순분 약력

 

- 경기 수원 출생

- 1990경인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

- 1991문학예술시 부문 신인상, 한국시조신인상 당선

- 시집안개꽃 은유』 『시간의 세포』 『바람의 뼈를 읽다

현대시조100인선 블루 마운틴』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 시조시학상본상, 한국시학상, 수원문학작품상, 나혜석문학상, 홍재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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