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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 외1편 / 황정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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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6-27

 

 

▲     © 시인뉴스 Poem



검룡소

 

 

여기서부터 시작이라니

마음 다잡아 앉혀 듣는다

어떤 말들이 저 깊고 깊은

목구멍을 자꾸 치올라

이윽고 갓 우린 찻물처럼 고여

전하는가, 어둑한 귓속

환하게 하는가

 

소용돌이로 몸 튼 암반

양치류의 푸른 혀들이

가만가만 핥아 주는 따스한 적막

채워진 만큼 덜어내는 완고한 물의 중심이

어린 물줄기들 손잡아

먼 강에 이르게 하는 것

 

그 강에 사는 일이 돌 밑 이끼처럼 차고 서늘한 슬픔일지라도 나 한때 여기 푸른 땅에 몸 붙여 자라는 풀이고 나무였으니, 물속에 던져진 동전닢처럼 세상에 던져져 씻기고 닳아 녹슬어 희미해진 뿌리 다시 발원으로 꿈틀대는 생명으로 딛고 한 발짝씩 터널 같은 숲 더듬더듬 빠져나가는 느낌. 배냇짓처럼 쫑긋거리는 나무 이파리들 사이사이로 물소리 바람소리 하염없는 여기 아득한 시간 속의 내가 초석으로 앉아 찰랑찰랑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검룡소/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소(). 한강의 발원지

 

 

 

      

 

안심동 편지

 

 

기억하지 못하기는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동안 뒤란에 감나무 몇 그루만 지루하게 키워냈습니다

초가 호롱 아래 가물가물 이어지던 당신의 운문들이

내 안에 오래 된 장서처럼 빼곡한데

기억은 낡은 미농지처럼 흐릿하고 고요합니다

식구들 가슴에 더운 쇠죽 끓이시던 큰아버지

황달 들어 급히 당신 곁으로 가시고

아들 놓치고 벽장 속에 오색 꽃등 달아 혼몽하던 큰어머니

박꽃 같은 백발로 당신인 양 여기 홀로 계십니다

지금쯤 밤송이처럼 박히던 미움도 편안해지셨겠지요

낡은 침목 위에 가축처럼 축 늘어진 철길

깨진 독처럼 걸린 터널 안은 깜깜하지만

마을 앞 큰 내도 작은 도랑이 되었듯

사는 일도 그렇듯 몸도 마음도 줄어 작아지는 것인지요

지게처럼 등에 업혀 운신하던 늙음도 칸나처럼 붉던

당신이 살아 낸 세상도 한 시절 피워냈다 지는 꽃밭이었음을

당신의 뼈마디 하나 품고 살아 내며 더듬더듬 알게 됩니다

흐린 기억의 초상이 문패처럼 걸려 발길 붙드는

동안 우체부 한 번 다녀가지 않았을 주소

경북 안정면 안심동 번지

참빗살처럼 촘촘 꽂히는 한여름 햇살 속

당신의 흰 고무신 같은 낮달 아래

마음 몇 무덤 무너지다 갑니다

 

 

 

 

 

황정순

 

현대시문학 등단

7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수상

2회 교과서 관련 수필 공모 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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