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새벽 별빛 외 9편 / 진순분 시조 시인

- 작게+ 크게

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6-22

 

▲     © 시인뉴스 Poem



    

 

새벽 별빛

 

 

 

 

누군가의 아픔처럼 어둠을 벼리는 별빛

 

세상 꽃눈 다 틔우고 홀로 열매 맺히도록

 

죽도록

 

산다는 것은

 

혼신으로 빛나는 것

 

 

 

 

 

       

 

 

벌레 보살

 

 

 

고맙습니다 주렁주렁 붉은 고추 토마토

알알이 영근 옥수수며 강낭콩 애호박

햇빛과 비를 내리어 열매를 맺어주시니

 

땅속에서 기름진 흙 일궈준 지렁이와

열매 키운 무당벌레와 꽃가루 나른 벌들

묵묵히 긴 날 수고한 보살들이 고맙습니다.

 

삼복에도 밭에 오면 매미 먼저 울어주고

김매주고 북주며 흘린 땀만큼만 주시니

곡식알 한 알조차도 허투루 받지 않습니다.

 

 

 

 

      

 

 

항아리

 

 

내 안엔

늘 무르익는

무언의 몸부림 있네

 

노을녘 산산이 흩어지는 산 그리메 보며 깊은 골 떠나간 메아리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제는 부끄러운 듯 빈 울림으로 남아 몇 겹의 상심한 침묵 가벼운 목숨이 죽은 듯 엎드려 살아가다가 어느 날 뜻밖에 벌거벗은 미친 사랑 품으면 산 능선 위로 보름달은 떠오르고 아, 나는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안에 파도치는 설상가상의 몸부림 안에 스스로 갇혀 홀로 무르익어 갈 수밖에는

 

이승 밖

꽃물 든 울음이

눈비 맞아 떨고 있네.

 

 

 

 

      

 

 

블루 마운틴

 

 

 

 

적막한 그대 하현의 섬 당도하기 위한

 

끝내 은밀한 생각의 뿌리 투과하기 위한

 

간절한 치사량의 불면

 

주문 외듯 매혹되는

 

쓰다만 시 한 줄도 활짝 꽃피우라고

 

어둠의 덫이 열리고 새벽 별 빛날 즈음

 

황홀한, 블루 마운틴

 

충혈이 향. . .

 

 

 

 

 

  

 

 

시간의 세포

 

 

 

햇빛 속을 파닥이며 부유하는 먼지 한 톨

눈이 부시게 미세한 실핏줄 훤히 보이고

에서 금방 깨어난

목탁 소리 화두 같다

 

밤하늘 별 떠오르듯

공기처럼 가벼운 존재

사람과 사람과의

영혼과 영혼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일상을 작파하고

 

살아있다 가는 길

잠시 떠도는 것

찰나에 사라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고요 속 시간의 세포들

가부좌한 먼지 한 톨

 

       

 

 

 

 

 

 

 

 

말없이 말을 하는

절박한 눈빛이다

감성의 각질층이

푸스스 머리를 털며

곳곳에 산발한 절망이

푸른 비명을 지른다

 

그날 어둠 속에도

모든 소리란 소리

소리가 되지 못하고

정적은 호흡곤란

벽시계 초침 소리마저

목이 잘려나간다

 

갑자기 마른번개

3초 후엔 천둥 치고

다시 어둠의 찰나

꿈마저도 산산조각

말없이 말하는 눈빛만

숨 막히듯 부동이다

 

 

 

      

 

 

낮은음자리

 

 

 

 

객지로만 떠돌다 지쳐 돌아와 앉는 자리

 

고향의 쓰디쓴 익모초 한 사발 들이킵니다. 격정이 사라진 하늘가엔 그저 흰 눈발만 히끗히끗 슬리고 이미 슬픔이라고 말하기엔 늦어버린 시간입니다. 오랜만에 잠도 잘 오고 꿈도 꾸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루해가 무사히 지나가 버리면 가만히 낮은 음으로 낮은 음으로 엎드려 조금씩 조금씩 그대 가슴 울리는 일, 편안한 이승 길 깊어가는 노을 녘엔 고요한 마음자리 밝혀 앉는 일, 가을 마른 풀 내음으로 익어가는 길

 

숨죽여 우는 목숨이 향기를 피웁니다.

 

 

 

 

      

 

 

21세기 고독

 

 

 

 

까닭 없이 쫓기던 허리 결린 일상에서 오금 저린 생각이 파행으로 물결치며 끝까지 탈주했지만 끈질기게 쫓아왔어

 

우리 35장의 무대는 막이 내리고 연극 속 주인공은 어디론가 행방불명 중 늦은 밤 텅 빈 객석만 진을 치고 있었어

 

이따금 천둥 번개 가슴을 밟고 지나가고 돌아누운 산 능선엔 서로 다른 공백의 숨결 낯 설은 현실이 숨어 흐느끼고 있었어

 

 

 

      

 

 

 

따스한 순간

 

 

 

 

1

동안거에 들어있던 먼 산이며 저 샛강이

봄물을 퍼 올리며 푸른 입김 내뿜을 때

내 마음탁발승 되어 구원의 길을 간다

 

2

살과 뼈 발라낸 목숨 마침내 흙이 되듯

한순간 살아있는 미물임을 깨달을 때

그대로 고개를 숙여 큰절을 올리고 싶다

 

3

고된 삶의 굽이굽이 별빛 같은 노모 말씀

궂은 날맑은 날도 다 지나간다는 그 말

눈부처, 눈물 꽃 반짝 눈발 되어 내린다

 

 

 

 

 

     

 

선착장 부근

 

 

 

 

새우잠 떨친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목쉰 갯벌 뱃고동은

겨운 몸을 뒤척이고

사람들 몇몇이 낮게

불빛 속을 걸어온다

 

해장술 한 사발에

찌든 삶을 얹어놓고

목도꾼 거친 숨소리

선착장을 빗질하면

생각은 구슬땀 꿰어

하루해를 적신다

 

가끔 쿨럭이며

가로등이 떨고 섰다

우리의 어깨와 등

굵은 줄을 그어놓고

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팽팽하게 닿는 하루

 

 

 

 

 

 

진순분

 

경기 수원(1956)에서 태어나 1990경인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1문학예술시 부문 신인상 당선, 한국시조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안개꽃 은유』 『시간의 세포』 『바람의 뼈를 읽다

현대시조100인선 블루 마운틴』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를 펴냈다.

시조시학상본상, 한국시학상, 경기도문학상본상, 수원문학작품상, 나혜석문학상,

홍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시인뉴스 포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