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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외 9편 / 서수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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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6-20

 

▲     ©시인뉴스 Poem

 

 

이사

서수찬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을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뜨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꽃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갈매기떼

서수찬

 

해변에 갈매기 떼가

내려앉아 있다

사람이 다가가자

일제히 날아오른다

수많은 갈매기 떼가 서로

부딪칠 만도 한데

바닥에는 부딪쳐

떨어져 내린 갈매기가

한 마리도 없다

오밀조밀 틈도 없이 모여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날개를 펼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었는데

실상은 갈매기들은

옆 갈매기가 날개를 펼

공간을 몸에다

항상 숨기고 있었다.

 

 

 

 

      

 

콩알 할머니

서수찬

 

콩알 할머니

길 한 편에

콩알만하게 앉아

콩알을 팝니다

사람들은 콩알 몇 개를

더 담아 주어도

콩알만한 인심이라고

한마디씩 하는데

비둘기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콩알일망정

콩알 할머니에게

연신 절하면서

콩알을 주워 먹습니다.

 

 

 

 

      

 

모과나무

 

서수찬

 

우리 회사 앞에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나무에는

열매가 익기 전에

따먹지 말라는 푯말이 걸려 있다

모과 열매를 따먹는

사람이 있긴 있나 보다

못 생기고 누가 몇 백번을

주물렀다 폈다 하면서 구겨놓은 열매

어디서나 다 보이게 얼굴은 왜 그렇게 큰지

신문지를 덮어두고 싶은

나도 시집을 내면 시집 앞에

제목 대신에 시가 익을 때까지

읽지 마세요, 라고

적어 놓아야 겠다

내가 몇 백번 주물렀다 폈다 해 놓은

내 모과들.

 

 

 

     

 

 

살구나무

 

서수찬

 

 

살구는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달고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에 붙은 열매는

그만큼 욕심을 붙잡고 있어서

열매에 대한 애착이 심해서

떫고 맛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살구나무와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걸 몰랐으나

근처 밭에서 평생 살던 사람이

알려 준 후였다

내 시집에서 떨어져 나간 내 시가

인터넷에서 마구 굴러 다니고

밟히고

어떤 것은

제목까지 바뀌어 있는 것이 희한하게

더 맛있고 달곤 했다

내 것이란 생각을 잊고 산 후였다.

 

 

      

 

 

 

지하 셋방 앞 목련나무

 

서수찬

 

문을 열고 나오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목련꽃이 너무나 깊게

나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이삿짐을 나르다가

장롱이 안 들어가서

목련나무 몇 가지를 자른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때 일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금방 내 옹졸한 속을 알아차립니다

벌써 목련나무는 그 잘렸던 상처를

꽃으로 삼켜 버린 지 오래입니다.

 

 

 

 

    

 

 

앉은뱅이 밥상 하나가

 

서수찬

 

앉은뱅이 밥상 네 다리 중

흔들리는 다리 하나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

안 보이는 쪽으로 돌려놓아도

거기 화살처럼 꽂히는 눈들

밥 얻어먹는 내내 내 마음도

테이프를 붙이게 되는데

밥을 다 먹고 난 뒤 밥상이

테이프를 붙인 다리마저 접고

냉장고 뒤에 난 좁은 틈으로 들어갈 때쯤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뼈다귀만 남은 몸으로 우편물 가방을 메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이십 년 동안

대림동 구석구석을 돌던 아버지

어깨와 다리에 다닥다닥 붙인

파스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커다란 음식점을 놔두고

냉장고 뒤 같은 허름한 골목 분식집으로

밥상이 되어 들어가시는

아버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난지도

 

서수찬

 

 

 

1.신새벽 미명에

 

신새벽 미명에 홀로 깨어나 이홉들이 소주로 공복을 채우고

물론 쓰레기 속에서 찾은 두꺼비였지만 어제의 운수를 되살리며

판자집을 나선다. 정든 아내 같은 넝마 통을 등에 이고 일터로 터덜

터덜 나가 보면 우리와 등 돌린 강쪽에서 날아오르는 한 떼의

물오리 희망의 나라로 떠나는 소리. 한강 상류의 잠실벌은 요번

여름 홍수에도 끄떡 없는지 그림자 한 점 떠내려 오지 않았다. 다시는

안 보리라 다짐했던 여의도에 레져를 즐기러 물 흐르듯 오고 가던

사람들은 추한 곳을 골라 제멋대로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개똥참외 같은

난지도를 알기나 할까.아직도 신새벽 미명에 깨지 않은

잡동사니들을 우리의 팔과 다리인 갈쿠리로 조용히 깨우면

그들은 우리에게 살과 피가 되었다. 오늘은 끗발이 나려는지

굴비 같은 깡통이 더러 보이고.

 

 

2.어머니 전상서

 

 

어머니, 이 변방에도 보름달은 떠서 여지없이 추석을

알리는군요. 여기는 농부들처럼 거둘 것은 없지마는 어머니께

보낼 선물 하나 눈에 띄지 않는군요. 그래도 사람 사는 명절이라

일손을 빨리 놓고 돌아와 아내와 송편을 빗다보면 왜 추석은

신경통마냥 우리의 뼈마디를 짓누를까요. 피로에

쫒겨 간밤에는 이상하게도 어머니 얼굴 대신에 꿈속에 잠실

메인 스타디움이 떠 내려와 우리와는 상관없는 올림픽만

배부르도록 봤어요. 불효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간 아내는

빔을 준비하느라 여수 앞바다 같은 난지도에서 건진 잠바며 양말이며

심지어는 속옷까지 열심히 빨고 빨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널었어요.

사람 내음을 실어다 나르는 청소차도 오지 않는 오늘은 왠지 우리의

원래 고향 이었을 잠실벌에 연어처럼 기어올라 몸섞고 살아

봤으면 하네요. 그것이 죽음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말이어요.

 

 

 

 

다시

 

서수찬

 

어떤 새장수가

새를 절 입구에서 팔고 있다

새장에는 새가 가득 들었다

방생 할 때마다

복 하나씩 물어다 드립니다

신도들은 새를 사고

절 안에서 방생을 하고

속세의 때가 다 지워진듯 하고

사람들마다 손에 들은 빈 새장에는

만복이 대신 채워진듯 하고

새장수는 안 보이는 숲으로 들어가

다시 새를 부르고

훈련된 새들은 다시 새장으로 들어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방생을 다시 돈으로 사고.

 

 

      

 

 

 

시금치 학교

 

서수찬

 

어머니는 시금치 밭에 늘

앉아 계시는 거로 우리 형제들을 가르쳤습니다

시금치라는 것이 먹어 보면

아무 맛도 안 납니다

그러나 김밥에라도

한번 빠져 보세요

소시지 계란 등이 들어 있다 치더라도

김밥 맛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김밥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에다가

자식들이 그렇게 되길 바랐나 봅니다

우격다짐으로 배운 게 우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는 시금치 밭에

노상 앉아만 계셨어요

어머니의 수업은 파란 시금치 밭

여기저기서 바람들과 천진난만하게 노는

시금치 잎사귀를 자식들처럼

그윽하게 바라보는 게 전부였지만

밭 가생이에 잔돌 탑을

수북하게 쌓아 놓는 것만 봐도

어머니가 매일 반복하는 수업이더라도

얼마나 정성들여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어머니가 교과서에 골고루 밑줄 쳐

놓았듯이 우리 형제들은 골고루 그

밑줄을 읽고 자랐습니다

밑줄에서 남을 억누르지 않는 몸가짐이

시금치처럼 올라 옵니다

다들 오셔서 먹을 만큼씩만 뜯어 가세요.

 

 

 

 

 

 

 

*서수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9<노동해방문학>'접착을 하며' '복개공사' '안전장치'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시금치 학교>가 있다

2007년 시집 <시금치 학교>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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