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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남자 외9편 / 김 미 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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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6-04

 

▲     ©시인뉴스 Poem

 

 

 

안개남자

김 미 정

 

이것은 한 여름 밤 번개를 만드는 바람의 손이 그 손을 꽉 움켜쥔 안개, 그 마지막 눈빛을 기억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다

 

 

 

69사이 안개가 가득하다

 

거꾸로 매달린 빌딩 사이로 한 남자가 떠가고 있다 안개에 손목을 넣고 흔들자 빌딩의 벽과 창이 휘어진다

 

눈동자, 안개의 피를 수혈하는 눈동자가 다가온다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때마다 휴대폰에서 희뿌연 골목이 흘러나오고 네가 보낸 문자를 읽을 수가 없구나

 

손바닥을 펴서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일을 생각한다 막다른 햇살은 어디로 갔나요

 

빠져나가는 모래알들을 세어 봐요

 

빌딩을 덮은 거대한 동공이 소리친다 태양을 가린 안개가 지나, 지나갑니까

 

내일이 뚝뚝 끊어져 내린다 흘러내리는 표정일까 손바닥이 젖어버렸어

 

남자는 미끄러지는 모래알을 던져버린다

태양이 그림자를 끌고 날아간다

 

 

 

-젖은 것들은 욕망과 내밀하고

 

 

 

밖으로 넘쳐 물컹거리는 문장이다

 

먼 길 돌아온 너의 끝이 둥글다

 

처음 보는 해안선이다

 

축축한 것을 찾아 떠나는 날들

 

너와 나, 수평선이 어긋나

 

투명한 감정을 파도 위에 올려놓고

 

둥글고 붉은 길이 미끄러진다

 

당신이 녹아 사라지고

 

나는 이제 겨우 모래해변에 도착한다

 

부드럽게 닿는 자리마다

 

처음 맛보는 바다가 깊어지고

 

몸 안으로 뜨거운 별들이 몰려온다

 

수면을 열고 흰 새가 날아가고 있다

 

 

 

 

 

안개식탁으로 오세요

 

 

 

잘 구워진 안개가 접시 위에 놓여 있다

 

물컹한 창으로 지워진 얼굴들이 지나간다

 

여기, 혀를 깨문 둥근 식탁이 있어요

누구나 아무데나 앉을 수 있지요

 

그래서내가 필요해?

 

음식이 가득한 식탁에 앉는 일

허기를 인정하는 것이지요

 

외롭다고 누구나 급하게 먹는 건 아니에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액체의 몸짓으로

아무렇게나 움켜잡는 식탐 한 스푼

 

그래요, 모든 맛은 당신이 가져왔으니까요

 

맛없는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깨진 접시는 뜨거운 걸 그대로 삼킨 걸까 아무 말도 못하고 흘러내리는 냅킨들, 오늘의 메뉴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맛있는 것들 그 곁에 위대하게

 

입 안 가득 안개를 구겨 넣고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비밀의 맛

 

그래서네가 필요해

 

 

 

 

 

물고기 신발

 

 

 

눈물 나는 그런 포즈는 아니에요

젖은 신발이 되었고 그날

나는 문을 향해 엎드려 있었죠

 

발에 꼭 맞는 발걸음이 앉았다 날아가요

나를 물가로 데리고 가요, 당신

 

신발이, 앞으로 나아간다, 휘어지는 고요, 호수의 옆구리가 오므려졌다, 펴진다, 버려진 입구와 출구사이, 투명한 지느러미가 돋아난다

 

어느 날 나는 내가 되어 버려요 갑자기

신발이 사라진 그 길들이 젖지 않은 채 젖어가요

 

죽은 척 가만히 떠올라요

 

누군가 낚시를 하다 신발을 건질 거예요

 

 

 

 

 

 

형용사가 가득한 의자​​

 

벽을 타고 있었다

 

그날 음악은 없었고 의자 밖으로 나간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데

의자가 의자를 들고 벽속으로 걸어가는데

 

의자는 구부러진 벽이다

고요히, 불타오르는, 점점 진해지다 희미해지는

 

당신이라 부르면 안 되나요 동시에 둘이, 우리 둘이 앉으면 꿈밖으로 나갈 수도 있는데

 

앉았다 날아간 수많은 온기가 딱딱해져요

시계 초침이 벽을 걸고 나와 함께 사라진다 시간의 뒷덜미를 의자에 묶고

 

그날처럼 모든 건 눈앞에서 사라져요 기다려다리를 모으고 의자가 젖고 또 젖어가는

 

벽은 어떤 소리를 삼키고 잠자는 걸까요

문장들이 주어를 지우며 타들어가는 의자에 앉는다

 

다시 벽이, 벽들이 다가온다 꿈을 뚫고

 

모든 것을 삼킨 의자가 잠든 나를 바라봐요 늘어진 팔다리를 만져요

무릎의 깊은 무늬가 잠깐 환해졌다

 

나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당신의 두 다리를 껴안고

사라진 의자에 앉아

벽과 함께

나는 다시 사라진다

​​

착시

 

 

 

두 마리 얼룩말이 달리고 있어 초원은 아니지 멀리서 보면 초원일지도 모르지 얼룩말이 아닐지도 모르지 검정과 흰색이 위아래 리듬을 타며 섞이고 먹구름 사이 검게 탄 꽃잎들이 누워 있어 창밖에는 그녀와 커튼이 펄럭이고 지난 밤 타오르던 침대는 젖어가지 오늘 이 아침 이토록 현실적인 무늬는 없지 손목시계와 벽시계가 각각 다른 시간을 달리며 내가 고딕체로 사랑해라고 말하자 화단의 꽃들이 이내 시들었어 빠르게 넌 계단을 오르고 난 종이로 오린 그림자를 움켜잡지 이제 너의 손을 놓을까 오늘 이 아침 얼룩말이 달리고 빗줄기가 달리고 검정도 흰색도 아닌 구름이 초원을 달리지 아니 초원이 아닐지도 모르지 당신이 아닐지도 모르지 두 개의 시계가 뜨겁게 울고 있는 지금, 불가능한 무늬는 멈추지 않고

 

 

 

 

 

 

 

명랑한 이별

 

 

 

  신발을 뒤집어 울음을 꺼내요 그날 당신을 따라가지 않은 것은 바람에 베인 발자국 때문일까요 신발 가득 고인 눈물을 태양에 비춰보아요 플라타너스 시든 잎과 시들고 있는 잎 그 아래 서 있는 미안해

 

휘파람이 골목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에요 모든 꽃들은 바람을 뚫고 피어나는데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내 발을 밟고 서성이네요 비로소 안개꽃이 보이고 마침내 펄럭이는 표정으로 모든 건 눈앞에서 사라져요

 

조금만 빨리 달리면 잡을 수 있을까요 안개처럼 우리가 우리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면 무사히 내일이 당도할까요 뿌연 간유리를 사이에 두고 웃을 때 보이는 슬픈 얼굴처럼 투명한 나무들이 나를 들여다봐요

 

 

 

 

 

입술에 내리는 비

 

 

 

말할 수 없는/ 말하지 않는

비가 내린다

 

세상 모두 모르는 일이 되어 쏟아져요

 

아픈 별을 견디는 밤하늘처럼 어제도 그랬죠 당신, 나를 잊기로 했나요 두 손을 얹고 잠든 새를 보아요 그래요, 이제 다른 누군가의 눈빛이 되어 볼게요 지워진 얼굴이 되어 볼게요

 

빗방울과 또 한 빗방울 사이

투명한 꽃만 피우는 나무들

 

그 아래 허공의 발자국이 쌓여가고 침묵을 발설하는 빗방울이 입술을 덮어요 창을 만지던 버려진 손가락들, 환해지다 끝내 흘러내리고

 

비가 내린다

잊어버린/ 잊을 수 없는

 

 

 

 

 

심야도시라는 텍스트

 

 

 

속도가 쏟아지는 환승역

 

귀 없는 창들이 뛰어내리고 떠도는 발자국이 맨홀 속으로 빨려든다 고장 난 브레이크는 잘 팔리지 않는 네온사인, 멈춰 선 자동차가 흔들리는 눈빛을 발음한다

 

사물을 닮아가는 눈동자. 다 닳아버렸어

 

밀폐된 출구는 사라진 입술을 전송하고 플러그에 매달린 비명들 질주의 파동을 따라간다

 

빌딩은 어둠을 기어오르고

 

불가능한 우린

 

달리지 않으며 달리고 있다

 

 

 

 

 

가면들

 

 

 

구겨진 얼굴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쏟아졌고

 

환승하는 반쪽은 어디로 갔을까

비밀번호 없는 얼굴이었지

 

손잡이마다 목들이 덜컹거리고 누군가 나를 바라봐 또 다른 얼굴이네요지는 해가 하이힐을 신고 달려 열렸다 닫히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지

 

난 손바닥에 가슴에 얼굴을 묻히는 중이야 때론 흩어지던 정거장이 어깨를 툭 치며 어디가세요 에코를 울리며 누군가 방금 내 앞을 스쳐갔어 출구가 입구가 되는

 

얼굴 밖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들

 

빈 테두리만 남아

흐리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하나를 벗으면 또 하나가)

가장 먼 표정을 만지며

 

 

 

 

 

 

    김 미 정

약력; 2002[현대시] 시 등단,

2009[시와세계] 평론 등단.

시집하드와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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