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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외9편 / 김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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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6-03

 

▲     © 시인뉴스 Poem



 

세습

김령 시인

      

 

 

집이 뿌리째 뽑혔다. 어금니처럼 움푹 들어가 박혔던 조부의 서말 가웃 집터, 아비 빠져나오려 혼신을 다했으나 들썩거리는 것으로 그쳤던 집, 포크레인 이빨 근들근들 마지막 뿌리 물고 있다. 기어이 검은 밑구멍 보인다.

 

엉거주춤한 대들보, 야윈 기둥 쏟아지는 햇살에 민몸 드러낸다. 거멓게 손때 묻은, 아비를 따라 수없이 들썩였을 검은 뿌리, 기둥 저 안쪽 열 너 댓 살의 나이테, 날마다 한 걸음씩 벗어나 기어이 부산으로 떠나며 자꾸 돌아보는 뒷모습 비친다.

 

초겨울 해질녘, 꽃도 없이 아비는 병든 밑동으로 들어 왔다 마른 가지 사이로 별이 숨는다. 버스가 덜컹일 때마다 재발한 늑막염으로 구멍 난 옆구리, 누런 고름 울컥 눈물을 쏟는다. 감자알 같은 다섯 남매, 나무로 붙 박힌 아비는 자식들이 꽃씨로 날아가길 바랐다.

 

예순 넘은 아버지는 광양 어디 공장에 경비 일자리를 얻어 갔다. 평생 처음 부쳐온 월급, 어머니 화색이 돌았으나 공장은 이사를 했다. 삽을 멘 아버지 논물에 비쳐 땅 그림으로 새겨진다. 새떼들 땅 그림 물고 저녁 하늘을 날고 아버지 기둥 속에 집을 짓고 다시 나오지 않았다. 기둥을 의지하던 벽이 쓰러졌다.

 

 

 

 

 

기일 즈음

 

꿈속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타임 슬립처럼 자꾸 결말을 바꾸어 꾼다

꿈의 끝마다 아프고 아프다

 

아스팔트에 몸을 뉘던 꽃잎

살짝 뒤채어 풀숲에 내려앉듯, 그날

퇴근길 찍혔던 부재중 전화를 받았다면

너는 삶 쪽에 안착했을까

 

감잎 아래서 야무진 꿈을 말하던

넌 소읍의 성공한 동창이었지

 

홀어머니의 육남매 중 막내

대도시로 유학 온 열일곱 살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었지

 

일주일간 한마디도 않던 때가 있었다고

삼십 년이 지나서야 털어 놓았지

 

아내와의 지나간 불화를 얘기할 때도

누구나 한 두 개쯤 간직한

생존의 흉터라고 믿었지

 

어떤 상처들이 영원히 아물지 못하는 걸까

 

사월은 바람도 아래서부터 일어

여린 감나무 잎, 하늘 향해 살짝 팔을 쳐든다

 

그 곳에서 평안하니?

 

지는 꽃잎에 편지 보내기엔

참 멀구나, 너 있는 곳

 

 

 

     

구두

 

 

지금 나는 패배의 명백한 증거이다

 

반짝이는 유리 구두에 몸을 구겨 넣는 건 언제나 실패했다 구두를 신고 호흡을 멈추어도 살은 끊임없이 삐져나왔다

 

물이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앙증맞은 구두에 꼭 맞는 물이었다면

 

잘 했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너는 구두에 꼭 맞는 몸을 갖게 될 거야

 

삐져나온 살을 깎아냈지요 피가 흐르고 고통스런 비명, 구두 안에 몸을 넣는 데 성공했어요 하룻밤이 지나자 살들은 부풀은 반죽처럼 구두 바깥으로 흘러내렸어요

 

오른쪽을 조금만 깎으면 되겠어, 아니야 왼쪽을 자르는 게 낫겠어 아, 뒤꿈치를 더 미는 게 모양이 예쁘지 않겠니?

 

흘러나온 살을 다시 깎아내요 그러나 자고 나면 구두 밖으로 넘치는 살, 구르는 돌을 따라 내려오고 다시 내려온 시지프스

 

너는 너무 눈치가 없어, 이제 알아서 할 때도 되지 않았니?

 

요구는 끝도 없이 이어지죠 삐져나온 살을 깎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언젠가 나는, 구두에 꼭 맞는 몸을 갖게 될까요?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딸깍, 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사라졌어요, 호흡이 가빠졌어요

 

출구를 만들고 문을 열면 순식간에 벽으로 변해버리는 삶,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지 못하는 문, 사람들은 163라인에 내가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될까요, 나를 기억할까요?

 

신문을 봅니다, 이제 겨우 두 시간이 지났군요. 언제 올지 모르는 식구들, 이러다가 수분을 다 빼앗겨 나는 박제가 되는 게 아닐까요, 한 번씩 문이었던 벽을 밀어봅니다 꿈쩍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날 잊은 걸까요? 청소기를 돌립니다. 다섯 시간이 지났군요 나뭇잎 사이, 바람이 잠시 머물다 새의 등을 타고 떠나갑니다.

 

열 시간이 지나고 식구들은 문을 만들었습니다. 반갑게 다가갔으나 식구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어쩌면 나는 현관의 손잡이거나 자전거의 안장이거나, 누군가의 신발이 아니었을까

 

    

 

 

실종

 

신천 댁이 사라졌다

사흘 전까지 웃으며 고기도 드시고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고 하지만

십 수 년 전 영감이 사라지고 나서

아니 그 이전 고물고물한 아이들의 젊은 엄마일 때

설거지물을 텃밭에 뿌리러 나올 때면

가끔씩 검은 머리와 눈썹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과 그 친구들

대청마루에 북적일 때면 담박에

선명한 색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간격이 너무 멀어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새 날을 헐어낼수록 새 밤을 흘려보낼수록

온 몸의 빛깔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홀로 빈 집에서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마당 들어서며 부르면 느릿느릿 걸어 나오곤 했다

옷감의 물이 빠지듯 짙은 색에서 옅은 색으로

형체가 사라지고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날이 늘어갔다

명절이나 휴가철 자식들 들르는 날엔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시간이 흐르면 온몸의 색이 바랬다

벽 속으로 사라지는 날이 잦아지고

옅은 회색빛을 띠다가 허공에서 불쑥

한 팔이 솟아나곤 했다

일 년 전 작은 딸이 부산으로 모셔갔을 때

실루엣만이 따라갔다가 한참 후

겨우겨우 뒤따라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다시 고향집 돌아와 한 달 후

신천댁 벽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가볍고 가벼운

 

 

새벽 안개 속

화섬댁 리어카 끌고 물질 나선다

숨을 참고 병과 박스를 건져 올린다

오래 머문 곳은 어디나 집이 되어서

빈 병은 자꾸 손을 뿌리치고

박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그녀의 생에서 빠져나간 이름들

가만가만 온기 보태어 묶으면

주름진 손고랑을 채우는 바람

 

등대이던 아들 따라 뭍으로 온 화섬댁

숨비 소리 같은 아들 떠나고

리어카는 온기를 잃었다

인적 끊긴 해거름녘

골목길 깡통에 세든 노을

대문을 기웃거린다

 

그녀 마른 기침으로 물질 나간 날

바다 한 가운데 갇혔다

조금 더 가면 저기 부표인데

화섬댁 하늘로 날아오르고

바닥엔 흰 새 한 마리

한 호흡만 참았다면, 그녀

그리던 섬에 닿았을까

 

물결이 모래 그림 지우듯

바퀴는 새의 날개를 넘나든다

잠시 드러났던 바닥

다시 밀물 차오른다

 

그리운 꽃섬

그녀, 도착했을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우리 조상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더 가까운 조상은 김해에 터 잡은 김씨

중간에 김씨는 이씨와 결혼하고 그 후손은

주씨와 결혼하고 그 후손은 최씨와

또 박씨와 정씨와 또 모씨와

김해 김씨 피가 5g도 안될지라도

 

김문호*는 누구 핏줄이라 우겨볼 언덕이 없었다. 1961년생 추정, 성은 김씨로 추정, 확실한 것은 가난과 구멍난 폐뿐이었다. 이 땅에 존재해도 된다는 증명을 얻기 위해 그는 최초의 한양 김씨 시조가 되었다 2008년부터 한양 김씨 시조로 7년을 살았으나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강봉수*는 번지미상 부모미상에게서 태어나 보육원 앞에서 발견되었다. 원장의 조각난 기억들로 이름을 얻었으나 이 땅에 자신을 증명해줄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에서 나왔다. 폐지 줍던 최씨가 불쌍히 여겨 거두었으나 입양절차는 없었다. 그는 2004년 한양 강씨 시조가 되어 일가를 이룰 권리를 얻었으나 끝내 일가를 이루지 못했다.

 

내 핏줄기의 핏줄기를 타고 올라가 뿌리를 남기지 못한 시조를 만난다. 머리통 하나에 사방에 네 개의 눈 여덟 개의 팔 다리, 네 다리로 달리다가 두 발로 달린다. 세렝게티의 넓은 초원을 사자와 더불어 춤을 추듯 내달리다 때가 되면 기꺼이 사자의 먹이로 팔 하나씩 내어미는. 바람의 갈기를 온몸으로 쓰다듬다 바람에게도 팔 하나 떼어주고 구름에게도, 물가의 악어에게도 팔 하나씩 떼어주었다 그는 당대에 멸종하였다 .

 

강한 종은 살아남아 시조가 되었다

 

 

* <한겨레21> 이문영의 가난의 경로

 

 

 

      

 

 

여기는 삶의 가장자리 베란다이므로

 

 

빨래를 삶는다. 베란다에 휴대용 버너를 놓고 삼순이 속을 비우고 습내나는 수건을 욕심껏 넣는다. 조심조심 넘치지 않을 정도만 넣고 센 불로 중불로 삶던 지난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푸르르 거품이 끓어오르고 넘지 않을 정도로만 불조절하며 살아왔다 너에게도 꼭 한 걸음 전, 눈물이 차올라 넘치기 직전 멈췄다.

 

옷장 속의 옷을 반만 버리고 김치통은 위치만 바뀐다 확신이 서면 발걸음을 뗀다. 완벽한 삶이 시작되기 직전 언제나 딱 하나씩이 걸리는 삶, 바람 부는 쪽으로 우산을 받치고 웅덩이를 피해 걷는다. 모퉁이들은 빙빙 돌아 몸을 숨긴다.

 

비누거품이 삼순이 통을 넘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스렌지의 불을 힘주어 켠다.

 

 

 

 

   

관계

 

 

자고 일어났는데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욕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았다. 아까와 같은 얼굴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최대한 정확하게 눈, , 입이 있는 자리에 알아보기 쉽게 표시를 한다 좀 더 친숙해 보이지만 확신은 금물!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을 들이밀고 혹시 나를 아시나요, 물어보려는데 거울 속 얼굴이 낯설다 이 얼굴로 하루를 지내는 수밖에

 

아침에 눈을 뜨고 찬찬히 어제의 얼굴을 생각해 본다. 어제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저들도 자기 얼굴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전략을 바꾸어 슬픈 표정으로 다가간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공감하지만 내 질문을 들어줄 마음은 없다. 다음날은 화난 표정으로 그 다음날은 무심한 표정의 얼굴로 바뀌지만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다.

 

자고 일어나면 내 얼굴이 생각날지 몰라

 

 

 

 

 

 

 

 

 

 

 

 

 

 

 

 

 

 

 

봄비 내리는 사이

 

 

청소기를 밀며 하루를 연다. 동작과 동작 사이는 매끄럽고 속도는 일정하다. 그 틈으로 비가 내린다. 칼국수 먹자는 전화, 나는 정지 버튼을 누르듯 그대로 멈추고 칼국수 집을 찾는다.

 

국수 가락은 자꾸 흘러내리고

빗줄기 틈은 미로처럼 복잡해서 맹세를 숨겨두기 좋다.

 

꽃이 피는 마을길을 걷는 동안 날이 갠다. 산그림자 가만히 내려와 어깨를 다독이다 물러간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일상을 잇는다.

 

또 하루, 사는 연습을 한다.

 

 

 

 

 

 

 

김령

전남 고흥 출생. 2014토지문학제평사리 문학대상 시부문 당선.

2017시와경계로 등단. 현재 광주 성덕고등학교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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