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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 / 장종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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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5-08

▲     © 시인뉴스 Poem



    

 

 

복분자

 

 

빨래터에 앉아 복분자 두어 병 나누어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젖꼭지가 사라졌다.

웬일일까 간밤을 곰곰이 더듬어보니

아차, 빨래터에 그냥 두고 왔구나.

정신없이 빨래터로 달려가보니

창피해라.

이웃집 남정네가 두고 온 젖꼭지 하나를 열심히 빨고 있네.

아무리 빨아도 땟국물이 주르르 흐르네.

 

나머지 하나는 어디로 갔을까.

두리번거리니 오오라,

건너마을 까치머리 고등학생이 개울 건너에서

떠내려가는 젖꼭지 하나를 온몸으로 투망질 하고 있네.

 

홀딱 벗은 복분자 빈 병이 함께 떠 있네.

 

 

      

 

 

참말 거짓말

 

 

거짓말을 잘 하라고 열심히 가르친다.

거짓말이 제일 아름답다고 열심히 가르친다.

참말로 사람 죽이는 일 있어도

거짓말로 사람 죽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그 참말 참말로 참말이 아니라고

그 거짓말 참말로 거짓말이 아니라고

아무리 참이라 말해도 참이 아니고

아무리 거짓말이라 말해도 거짓이 아니라고

그러니 참말 같은 거짓말 잘 하고

그러니 이쁜 거짓말로 따뜻하게 잘 살라고

당신과 나는 다르다는 참말보다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다는 거짓말

사실은 그 참말이 거짓말이고

사실은 그 거짓말이 참말이라고

그리 알고 거짓말 잘 하는 사람 되라고

열심히 참말인 것처럼 거짓말 하고 산다.

거짓말 잘 하면 거짓도 참이 되고

참말을 잘 하면 참말도 거짓이 된다고

세상은 요지경이라 답도 없는 시험문제라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나도 모르는 말로 산다.

 

 

 

 

       

 

형수의 이름

 

 

갓난 아이 이름 지어들고 면사무소에 출생신고 하러 가다가 반가운 친구 만나 술을 마셨네.

 

잔뜩 취하고도 면사무소에 들러 서류를 다 쓰긴 썼는데, 정작 지어놓은 이름이 영 생각나지 않았다네.

 

머리를 싸매고 온갖 이름 되뇌이다가 긴가민가 하며 그럴 듯한 이름을 주워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형수님의 이름이더라.

 

 

 

    

 

 

분탱이

 

 

분탱이라 부르면 분명 아들 나온다는 말이 있었지. 설마 싶어 마지막 딸이 되어라 종녀라 이름 지었는데, 어쩌나, 또 딸이었네.

 

에라 모르겠다. 딸내미 듣거나 말거나 분탱이 분탱이 노래를 불렀더니 신기하게도 다음에는 아들이 나오더라. 딸부잣집 경사 났네. 분탱이 덕분에 경사 났네.

 

철이 든 분탱이 분이 나서 아버지만 보면 대들었네. 난 뭐예요. 분탱이지. 이름으로 불러줘요. 분탱이지. 분탱이 끝내 분 못 풀고 시집가서도 분탱이었네.

 

아버지 떠나기 전에 작심하고 물었다네. 제가 누구게요. 분탱이지. 이름이 머냐구요. 분탱이지. 하늘 같은 분탱이지. 아주 오래 전 우리 동네 이야기라네.

 

 

    

 

 

칙간의 보양재

 

 

칙간이라고 불렸던 재래식 변소를 다니다보면

가끔은 똥도 밟고 오줌도 밟고 구더기도 밟는다.

낮은 지붕 밑으로 잿간도 함께 붙어 있었는데

아버지가 좋은 거름 만들려고 똥오줌 뒤섞어놓은

잿더미에 빠지며 헤치며 엉금엉금 기어 넘으면

암탉이 낳은 뜨끈뜨끈한 계란이 숨어 있곤 하였는데

아버지 몰래 꺼내들고 뒤안으로 가 까먹는 재미는

오줌 냄새도 똥냄새도 구더기도 별 것이 아니었다.

외갓댁에 가면 외할머니 늘상 꺼내주시던

천하의 보양재 날계란을 몰래 훔쳐 먹으며

나는 무럭무럭 자라 장닭 같은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오늘 재래식 변소 같은 세상을 거닐면서

똥도 밟고 오줌도 밟고 구더기도 밟긴 하지만

그것이 모조리 살이 되고 피가 되리라.

나도 그들에게 혹간은 똥도 되고 오줌도 되고

구더기도 되면서 보양재 챙겨 주리라.

똥도 아니고 오줌도 아니고 구더기도 아니면

어디 가서 뜨끈뜨끈한 날계란 훔쳐 먹으랴

   

 

 

       

논두렁

 

 

첫째 아들 얻고 면사무소 출생신고 가는 남자, 논두렁 친구 술 한 잔 마시자 해도 뿌리친다.

 

둘째 아들 얻고서는, 그려, 신고는 내일 해도 되는 거 아녀. 논두렁에 붙잡혀 막걸리 몇 잔 들이킨다.

 

셋째딸 얻고서는 빈 논두렁에서 고함친다. 누구 막걸리 한 잔 안 할 거냐. 신고는 무슨 신고,

 

벼들이 일제히 고개 들며 수런댄다. 지랄 같은 봄은 왜 또 오나. 천 년 만 년 논두렁은 왜 이리 푸르기만 하냐.

 

 

     

  

 

, 마음대로 안된다

 

 

이빨 치료를 받는 중이다.

입을 잔뜩 벌리고 의사가 치료 중이다.

의사가 한마디 한다.

혀에서 힘을 빼세요.

혀에서 힘을 빼려는데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간호사도 한마디 한다.

혀에서 힘을 빼세요.

입을 벌리고 있으니 말은 할 수가 없고

용을 써 봐도 혀에서 힘이 빠지지 않는다.

어찌어찌 치료를 마친 의사가 또 한마디 한다.

혀 하나도 마음대로 못하시나요.

평생 교단에서 주둥이로 살았고,

글도 어쩌면 혀의 운동일 수 있는데

어찌 나는 내 혀조차 마음대로 못할까.

     

 

 

 

 

전설은 주문이다

 

 

개미는 개미대로의 전설이 있다. 개미가 되어봐야 알 일이다.

 

호랑이는 호랑이대로의 전설이 있다. 호랑이가 되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꽃도 꽃대로의 전설이 있다.

 

전설 속에는 들리지 않는 주문들이 있기 마련인데

 

잘 먹고 잘 살아서 영원히 죽지 말고 피라는

 

피보다 진한, 말보다 강한, 마치 바람 같기도 한,

 

그런 묘한 신호들이 서로도 알 수 없는 사이에

 

전설로 이어지지. 들리지 않는 주문이지.

 

 

      

 

달규

 

 

초등학교 동창생인 달규는 지능이 일 할 정도 빠져 있어서 일년 삼백육십오 일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는데 그 놀림까지도 사랑으로 받아들일 만큼 착해서 천사가 따로 없드랬지. 누나가 시집가는 날 친구들 우 몰려가서 동네사람들이 신랑 닦달하는 거 구경했는데 하늘같은 누나 떠나고 달규도 자라서 새각시를 얻었드랬지. 선녀 같은 각시가 딸 하나도 낳아주고 논일 밭일도 마다 않고 땀 흘려 일했드랬지. 너무 이뻤던 거야. 한 집 건너 동네 사내 한 놈이 밭둑 너머 솔밭에서 손을 슬쩍 당겨보았는데 그냥 끌려오더라는 거야. 다음날 막걸리 한 잔 마신 그 사내 동네 다른 사내들에게 저 이쁜 선녀년이 거시기하드라 떠들어댔다지. 그 날 저녁 두 집 건너 사는 사내가 달규네 집 찾아가 달규 술 사오라 심부름 시켜놓고 그 사이 각시 손 슬그머니 끌어당겼더니 어랍쇼 그냥 자빠지드란다. 다음날엔 건너마을 사내까지 안방으로 쳐들어와 달규 심부를 보내놓고 각시와 놀았다는데 동네 다 아는 소문도 달규는 몰랐드랬지. 어찌어찌 하다 달규네 보따리 싸들고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몇 년 안 가 부고가 왔네. 각시 선녀 새서방 얻어 어디론가 떠나고 달규 천사는 아등바등하다가 끝내 지가 살던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슬프지 않아.

 

 

 

      

어머니의 집1

 

 

어머니 오실까 봐 불 켜고 잔다

어머니 못 오실까 봐 불 끄고 잔다

 

 

 

      

 

 

장종권 시인 양력

 

1985현대시학추천완료. 시집 전설은 주문이다 .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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