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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몽상 / 류미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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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4-29

 

▲     © 시인뉴스 Poem



    

 

 

한밤의 몽상

 

 

 

빛 없는 어둠 속은 숨을 데가 없지요

한 치 앞 못 본단 건

쉽게 들킨다는 뜻

숨느라 바짝 붙어선 벽 관절이 투둑대요

 

냉담했던 냉장고의 흐느낌 들었나요

퉁퉁 부은 고독은 골목마다 다니는데

목덜미 문득 서늘할 땐 그가 곁에 온 거죠

 

오래전 관습들만 그림자로 살아남아

흔들의자에 앉아 시간을 짜 늘이면

그 줄 끝 붙들린 우린

인형처럼 춤춰요

 

의지라고 착각한 납덩이를 매단 채

새도록 달립니다, 심지어

꿈속에도

한밤 내 벽을 긁으며 고양이는 경고해요

 

빛 없는 어둠일수록 민낯이 잘 보여요

숨을 데는 많지만

숨 쉴 수 없는 낮을

용케들 걸어 왔네요,

이리 순한 얼굴로

 

 

 

 

기리는 노래

ㅡ 무명 시인

 

 

 

꽃빛은 열흘이고 연모는 세 해라지

 

해지고 달뜬 마음 밤낮 대신 우느라

 

늙어갈 얼굴이 없어

 

아름다운 사람아

 

 

 

 

 

전지적 지구 시점

 

 

 

이 극에 대하여는 평점을 사양느니,

 

1막의 주인공은 망망대해 바위섬, 침묵의 대사를 절도 있게 연기하며 온 생이 해지도록 혼신을 쏟고 있다 제2막의 주연은 눈길을 끄는 주목나무, 그늘 몇 번 흔들자 천년이 훌쩍 간다 그 아래 끄덕이는 단역전문 풀꽃들 ㅡ 관객 하나 안 든 날도 잎 하나 거르지 않는, 기실 이들이야말로 이 무대의 일등공신 ㅡ 일월과 성신이 조명으로 껐다 켜지면 한 천년 또 흐르고 그때마다 투덜대며 지나가는 사람 1, 2……

 

대본은 아직 집필 중

결말은 알 수 없다

 

 

 

 

 

물음표에게 길을 묻다

 

 

 

밖에 내걸렸다

귀 닮은 미늘 한 촉

 

그 아래 묵직한

납추 같은

눈물 한 점

 

깊은 곳 드리우라는

아주 오래된 전언

 

 

 

 

 

종설終雪

 

 

 

그날

내가 본 것이 그해 끝눈이었다

궁벽의 창밖으로 아득히 뛰어내리던

죄 없이 지는 것들을

처음 생각한 그때

 

마침표를 찍으려 계속되는 한 세계가 하얗게 길을 내며 변경邊境을 지워가고 바람이 부는 쪽으로 나는 돌아누웠다

 

죽음이 밝히는 아름다운 비극들,

흐느껴 부서지고

부시도록 죄 씻어

세계의 파국에서야 환히 불 켜지는데

 

처음처럼 지금 다시 그 눈

내리고

 

언제나처럼

더 늦어 마지막은 알게 되리라

 

미지의 출입구에서

섣부르게, 간절해진다

 

 

 

 

 

 

결핍

 

 

 

말하자면

이런 공허를 본 적이 없다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도

될 수 없는

 

단 하나, 그것 없음으로

세상이 다 차 버린 것

 

 

 

 

 

 

독자에게

 

 

 

몽테뉴가 수상록*첫머리에 쓴 말이지

 

독자에게.”

 

이 얼마나 친애하는 표현인가

그리곤

자기발각을 시도한 것이라네

 

문자는 벗지 못할 불가피의 가면,

가문의 성을 내건 몽테뉴 성 안에서

스스로 위리안치되어

내면에 든 것이네

 

사위 벽 내려다보는 램프심지를 돋우며

묻기 좋은 그 밤들

더듬어 걸었겠네

캄캄한 인간의 우주, 삶이라는 칠흑을

 

독자獨自인 자신에게 악수를 건네면서

제 모습 거울 속에 하염없이

비춰본 건

영혼이 뼈가 되도록

골몰하는 일이었네

 

 

*수필(essay)의 효시.

 

 

 

 

 

자존

 

 

 

난데없는 돌멩이에

물낯이 깨졌으나

 

이내 심연 속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오늘 그 강변으로 가

내 얼굴 씻고 왔다

 

 

 

 

 

근린近隣

 

 

 

전갈과 사막여우가

한집서 살 순 없지만

먼 듯해도 악어와 악어새는

동서同棲이다

 

* 옆엔 누가 또 있고 누가 있고 또 누가……

 

해바라기 달맞이꽃이

같은 볕 쬘 순 없지만

지렁이 솔이끼는

한 어둠 먹고 산다

 

대나무 옆은 대나무 또 대나무 대나무……

 

좋은 사람 곁에는

맞춤인 듯 좋은 사람

아닌 사람 곁에는

맞춘 듯이 어깨를 건

 

그 사람, 그 옆의 사람 아닌 사람 아닌……

 

 

 

 

 

나비에게

 

 

 

너를 말하기로는 이것이 좋겠네

무혈의 전사轉寫, 혹은

그림 없는 데칼코마니

무위의 붓자국으로

그려낸 풍경

 

두 귀를 여는 곳

두 손을 펴는 곳

결코 바닥나지 않고 거덜 나는 법 없는

그 자리, 잠깐 사이로

흐르는 영원

 

세상 젖은 날개로는 날아오를 수 없네

하늘대는 숨처럼

하늘처럼 가볍게

꽃자리, 그마저 잊고

다만 빛으로

그렇게

 

 

 

 

▲     © 시인뉴스 Poem



 

류미야

2015유심시조 등단. 시집 눈먼 말의 해변.

4회 공간시낭독회문학상 등 수상.

월간 공정한시인의사회발행인,

서울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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