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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 강성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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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제 기자
기사입력 2019-04-16

 

 

냉장고

 

 

할머니, 여기 들어가 계세요

오냐, 그때까지 썩지 않고 있으마.

 

썩지 않을 만큼의 추위가 방치된 노인

온도조절 장치가 소용없다

집을 비울 때마다 번번이 플러그를 뽑으신다

 

전화 받지 않는 아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재다이얼을 누른다

속을 잘 닫지 않아 눈물이 줄줄 샌다

 

기다리다 속이 거메진,

텔레비전 켜놓고 주무시는 냉장고

들판 건너온 바람이 

절간처럼 너른 집을 웅웅 돌린다

 

지난번 사다드린 고등어가 악취를 풍긴다

코드 빼면 죽어요, 할머니

도청에서 나온 복지사가 락스로 속을 닦는다

 

저물녘이면 문밖으로 귀 기울이는 냉장고

손자들이, 명절 때 모셔간 노인을

다시 보관한다

한번 닫아놓고 몇 달 동안 열어보지 않는다

 

온도를 낮춰도 얼지 않는 마음 하나밖에 없는,

바깥은 눈이 쌓여도 가슴엔 히터가 돈다

 

 

달빛이 밤마다 드나들며

썩었나, 썩지 않았나 확인한다

 

 

 

 

 

 

 

 

 

새의 화법畵法

-모자 쓴 신사* 

 

 

나는 당신이 거꾸로 세워놓은 그림

창을 내는 건 닿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한 나무에 세를 들었죠

 

닮지 않아도 닮은 해와 달처럼,

돌아보면 등 뒤에 당신이 있었죠

입에서 노을이 흘러나오곤 했죠

 

나가려는, 들어오려는 공기처럼

마주치는 날이면 

당신은 모래를 물어다 집을 지었죠

 

어제보다는 더, 내일보다는 덜 그대를 사랑해, 테레즈.

사람들이 말하듯,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허니!

 

나는 하늘이 허락하는 깊이까지 날고 싶었죠 

당신이 부리의 각도를 바꿀 때마다 

나는 새로운 필체를 만들었죠

 

잊을 거라고

잊는다고

잊었다고

잊지 않는다고, 잊지 못한다고

꽃잎을 새겨 넣었죠

 

 

오해와 이해가 한 침대를 쓰는 동안

전화벨이 빈집을 흔들었죠

 

당신은 별빛으로 밀어蜜語들을 골라냈죠

드디어 손바닥에 앉은 새 한 마리,

무지와 변명은 오랜 병이 아니죠

  

우리는 무럭무럭 태어나죠

그림을 바로 세울 시간이죠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1912122일 이후>.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강성남 시인
경북 안동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등단. 2018년 제26회 전태일 문학상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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