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물의 전쟁 / 임향자 시인

- 작게+ 크게

한영제 기자
기사입력 2019-04-05

 

 

물의 전쟁

 

 

할부로 구입한 이과수폭포

브라질 물을 주방으로 끌어들인다

 

이제는 생수시대

집집마다 주방에 우물이 있다

숭늉과 보리차 정화수와 한약을 달이던 샘물도 사라지고

 

오장육부도 윤택해진다는 옥정수

완벽한 육각수는 여전히 호황이다

가려움증을 치료하던 벽해수는

해저 심해수로 탈바꿈하여 명품 대열에 올라있다

 

물의 변신이 시작되고

알프스산맥에서 끌어올린 생수가 백화점 매장을 차지한다

빙하 최적층을 통과하며 자연 여과된 알프스 만년설

물보다 한수 위인 눈의 전쟁이다

 

500ml 생수 한 병

몇 백 원에서 몇 만 원대까지 천차만별

이동경로를 따라 달라지는 물값은 제 몸값을 다하고 있을까

 

이제는 렌탈 시대,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김선달의 후예들

몇 푼만 내고 가져가라고

TV가 정수기를 들고 안방까지 달려온다

 

 

 

 

 

 

 

 

 

호기심

 

 

네 살배기가 문방구 바닥에 엎드려 있다

비닐로 포장된 인형의 세계가 궁금한 듯 눈도 깜박이지 않고

판매대 아래 매달린 장난감에 마음을 맞춘다

서로 마주보는 표정이 해맑다

저 인형 속 세상은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한 세상

밀봉된 플라스틱 비닐이 뜯기는 순간 출산의 아픔이 쏟아질 것이다

하얀 점퍼 아래 시멘트 바닥의 차가움과

먼지로 더렵혀진 세상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쯤

어린 무릎도 단단해지리라

저 작은 몸뚱이가

만져보고 맛을 보고 부딪치는

그 시간에 아이의 생각은 자랄 것이다

한 조각 한 조각 호기심을 끼워 넣으며 맞춰갈 퍼즐은

아직 미완성이다

저 그림이 명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동전의 내력

 

 

양면에는

역사와 문화가 압축파일처럼 기록되었다

 

활짝 핀 무궁화를 시작으로

철갑을 두른 거북선이 등장하고

다보탑이 마음을 모은다

풍년을 기원하는 벼이삭

바다를 호령하는 장군은 가슴속에 살아있고

학 한 마리 날아오른다

 

손톱 크기로 작아진 다보탑

발길에 굴러가도 아무도 줍지 않는다

겨우 거스름돈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십 원

장군과 학 한 마리도 고액권에 밀려

지폐 밖에서 살고 있다

 

소원을 품고 연못에 던져지는 동전

그 많은 소원은 다 이루어졌는지

물속에서도 질긴 생명력만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돌아다닌다

평생 업이 되어버린 역마살처럼

 

동전을 받아먹던 공중전화기는 사라졌지만

카운터에 돼지 한 마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끔은 구걸하는 바구니에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신발로 기록하다

 

 

겨울비 내리는 도나우 강변

길을 멈춘 브론즈 신발이 녹슬어간다

글루미선데이의 암울한 장면처럼

홀로코스트 추모 신발이 빗줄기에 젖어간다

오직 저 강이 비상구였다

물 그늘이 드리운 어둠의 경계

총부리 앞에 길을 잃은 순간

강가에 신발을 벗어두고 도주한 맨발은

강물과 하나가 되었다

 

어지럽게 남겨진 분신들

아이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장미 한 송이 꽂힌 하이힐은 오래전 청춘이 시들었다

돌멩이를 품은 구두

끈 풀린 워커는 어둠의 똬리를 풀지 못했다

 

흔적은 서서히 녹슬어 가지만

빛바랜 시간 위를 걷는 선명한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한 줄의 문구로 가슴에 새겨진

주인 잃은 낡은 신발이 치욕의 역사를 기록한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허물어지는 순간

우리는 왜 손뼉을 쳤는지

 

 

 

 

 

 

 

 

 

 

 

등을 읽다

 

 

부자가 나란히 성묘를 한다

몇 해 전 먼 길 떠난 아버님을 향해

과거는 마감되고

징검다리처럼 한 세대가 지나도

핏줄의 힘은 닮아간다

 

서 있는 등을 읽는다

날선 모습만 보이던 남편의 등도

세상과 마주한 시간에 지쳐 조금씩 휘어진다

가족을 위해 수그린 등

차마 말로 하지 못한 시간이 드러난다

 

스치는 바람조차 무거운 나이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이곳까지 걸어왔나

 

한창인 아들은

푸른 우듬지를 향해가고 있다

또 어디에선가 갈라져 휘어질 삶의 가지들

흔들리는 바람에 아파하며 허공에 길을 넓히려면

꼿꼿한 허리를 얼마나 굽혀야 할지

 

청춘의 목록을 재단하면서

치열한 여름을 거쳐

자신의 무늬를 만들 때까지

등은 아직 물오른 봄이다

 

 

 

 

 

 

 

 

 

 

 

점핑의 계절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분수의 계절

 

놀이터로 변한 중앙공원이 소란하다

화강암이 깔린 인도를 마주보고 선 점핑분수

시차를 두고 물줄기를 뿜어 올린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 곡선으로 내려온다

허공이 물길을 만들어 터널을 세우는 찰나

아이들이 재빠르게 통과한다

 

때를 놓치면 예고 없이 물의 터널은 일어서고

아이들은 다시 분수 속으로 뛰어들 준비한다

옷이 축축해질수록 아이들 웃음소리가 높아진다

물의 깃털이 뛰어 올라 만나는 햇빛방울

분수터널에서는 밖의 세상도 환하다

 

물을 피해 통과하는 것은 즐거운 놀이

하지만 아이들은 곧 물에 젖는다

젖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나도 이 터널을 건너려고 젖을 각오로 뛰어든다

 

 

 

 

 

 

 

 

 

 

 

 

옷의 계급론

 

 

좌판에 철지난 계절이 걸린다

햇빛의 속지가 바뀌면

어디선가 몰려온 옷들

바코드도 없이 자신을 팔고 있다

유행을 주도하는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어느 지하 흐린 백열등 아래를 지나

진열의 조건도 따지지 않는다

노상을 지나는 바람에 잠시 자세가 흔들릴 뿐

다시 입을 닫는다

사내는 떨이도 외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주인을 기다린다

윗자리에서 내려와 바닥에 내려앉은 옷들

어느 몸을 거쳐 거리를 진열하는 중이다

누군가 벗어버린 허물이

체온을 붙잡고 놓쳐 버린 각을 위해

다른 몸을 기다린다

 

건너편 수거함에 누군가 옷을 밀어 넣는다

 

 

 

 

 

 

 

 

 

 

 

 

흔들리는 밤

 

 

불투명한 미래처럼 깜깜한 밤을 달리는 야간버스*

나를 깨워서 낯선 곳으로 데려가는 곳은 어디인가

세상의 길이 모두 지워진 시간

여러 길 위에서 헤매던 젊은 날처럼

나는 흔들리며 가고 있다

먼 이국땅에서 지도 한 장 들고 밤새 달리는 길

내가 걸어온 길이 마치 흔들리는 길이었으니

더러 돌부리에 넘어지고 더러 차를 놓치기도 하며

지나온 시간, 내가 놓쳐버린 역은 얼마나 될까

잠시 멈춘 간이역도 많지만

결국 이 막차를 타기 위해 이렇게 달려온 것이다

흔들리며 흔들리며 놓쳐버린 것들

사랑과 열정 놓쳐버린 이름을 생각하며

열 시간을 달린다

아직 어둠은 거치지 않았고

이 어둠의 깊이는 어디까지인지

종착역도 없고 마침표가 없는

나를 기울게 하는 흔들림이 길을 만들어간다

붉은 노을을 지나 어둠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노을이 사라졌다고 진정 사라진 것이 아니듯

내 가슴엔 아직 내일이 떠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파묵칼레까지 11시간 이동하는 야간버스.

 

 

 

 

 

 

 

 

 

 

 

디스코 팡팡

 

 

월미도의 랜드마크

오직 청춘들만 탑승을 허락한다

호기심이 덥석 엉덩이를 들이밀고

두 팔은 두려움을 꽉 움켜잡았다

 

디스코 팡팡

그 나라에 입국하는 순간

좌우로 흔들리고 허공에 붕 떠오르는 법을 따라야한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놓쳐버린 정신

둥근 테두리는 오직 회전에 몰두한다

 

DJ는 디스코 팡팡을 이리저리 조작하고

걸쭉한 입담으로 쥐락펴락이다

웃음거리로 전락한 탑승자들 구경꾼들은 더 즐거워한다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고문당하는 젊음

정신없이 흔들고 떠받치고 역주행하는

 

두려움과 즐거움이 반반 섞인 이 놀이를 맛보려고

호기심이 줄지어 대기 중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아슬한 각도에

둘러선 함성이 튀어나온다

 

 

 

 

 

 

 

 

 

 

 

 

 

그냥

 

 

쉽게 넘길 수 있는

그냥이라는 말

스스럼없이, 앞뒤 생각 없이, 빗장 열리듯

시간 되느냐는 한마디에

그냥 바람 따라 나선 것이다

계절이 시킨 일이라고, 굳이 둘러대지 않아도

홀연히 다녀온 자리

그냥 마음이 시킨 것이다

이유를 따지고, 계산하며, 머리 굴리지 않고

사심이 묻어있지 않는

그냥은 믿음이 더해진 말

혼자가 아닌 같이 마주하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때론

의미 없는 말을 들어주기도 하는

그냥

 

 

 

 

 

 

 

 

 

  

 

 

임향자 시인

충남 보령 출생

2016창작 21신인상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시인뉴스 Poe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