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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 이도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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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제 기자
기사입력 2019-04-02

 

 

목련

 

 

피었다.

 

중학교 국어 시간,

창문 너머로 뻗은 당신의 손끝에서 하얗게 피었다.

 

꽃잎 떨어진 텅 빈 교정에서

처음 시가 피었다.

 

환하게 핀 목련은 몸살이다.

환절기 고열 같은 것,

아랫목을 뒤집어 쓴

불타는 체온이다.

 

가난했던 날 오후 같은 환한 꽃이

왠지 나는 좋다.

 

햇살만 검게 그을려갔다.

봄날이 화사한 것은

마당 한켠에 불 지피는 아궁이 같은 목련 나무가 있고

빈 솥이 끓여내는 맹물 같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교실 미닫이로

또 피기 때문

그렇게 지지 않을 듯하다가도

환절기 감기처럼 알음알음 넘어간다.

 

아침마다 목련꽃이 핀다.

방문 사이로 봄바람이 분다.

세수하고 머리 빗고

어서 피고 싶어 달아오른 꽃봉오리다.

봄날은 인생은

약에 취해 몽롱한 오후처럼 빠르니

너무 서두르지 말아라.

 

목련이 피려는데

자꾸 딴지를 건다.

 

 

 

 

 

 

 

 

 

 

셔틀콕

 

 

지붕 빗물받이 청소를 하다

몇 마리 새를 찾았다

게임도 놀이도 아닌 일들이 당신과 나 사이를 날아다녔다

곡선의 끝엔 착지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서둘러 쳐올렸던가

몇몇 단어는 결국 우리의 곁을 떠다니고

라켓은 낮거나 짧은 관계를 잘도 띄워 올렸다

짧은 공중을 날던 스크래치들

목말을 피해 장대를 피해 아주 깊숙이 숨어있던 하얀 새

빠져나간 깃털 하나는 누구의 몫이었을까?

깃털은 낡은 교훈이 되었다

띄워 올리거나 날려 보냈던 시간도 모두

새가 되었다.

 

왜 놓치는 일들로 점수를 매겼을까

뚝 끊어진 말끝마다 점수를 잃고

우리는 동점이 되어간다

새들이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다

날지 못한 것은 늘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응원은 늘 반반씩이다

야유가 응원으로 들리기도 했지만

격려가 가끔 비난으로 착지했다

배운 것과 다르게 나쁘게 사는 데 익숙하다.

 

마당도 공터도 없고

공중의 왕복은 더더욱 없는 새의 놀이

멀리 날려 보내려 할수록 가까이 떨어졌던 셔틀콕

아니, 덩그러니 놓인 하얀 새

집어 들고 다시는

받을 수 없는 곳으로 날려버린다.

 

 

 

 

 

 

 

 

 

 

 

으쓱거리는 어깨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유난히 어깨를 으쓱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용병으로 정글을 누비고 훈장을 받고 동네에서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산 사람이었다.

 

그는 유난히 오른쪽 어깨를 으쓱거렸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오른쪽 어깨를 선호하거나 신봉하게 되었다. 말도 오른쪽 말을 하고 욕설도 오른쪽 말로만 했다. 당연히 왼쪽의 어깨는 소외되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왼쪽이라는 것을 존재하지 않거나 죄악시되는 것이라 여겼다. 마을을 오른쪽으로만 돌았고 왼손잡이를 경멸했으며 늘 오른편만 들었다. 우리는 그를 따라 오른쪽으로 다녔고 오른손만 들어 올렸다. 왼손잡이의 자리는 늘 구석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복싱을 배웠다. 라이트, 레프트를 연이어 맞으면서 누구에게나 양손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절박한 구석으로 몰렸을 때는 더더욱 양쪽 손이 필요했다.

 

왼쪽을 보기 시작하면서, 위아래와 양옆을 보는 눈이 생겼을 때 그가 왜 유난히 오른쪽 어깨를 으쓱거렸는지 왜 왼쪽 발이 한참 짧은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난히 짧아졌던 내 왼쪽 발이 막 자라기 시작할 때였고 절뚝거리는 내 그림자를 버린 날이었다.

 

 

 

 

 

 

 

 

 

 

 

대답

 

 

동그란 감자 씨를

세 쪽으로, 세모꼴로 나누어 심었다.

땅속은 난감했을 것이다.

땅속에서 골똘히 궁굴렸을까

갸우뚱, 세모꼴들은

동그랗게 바뀐다.

 

한 알의 씨감자가

땅을 설득하고

요동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구의 소속이니까

별의 본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진도 없이

울렁거리지도 않고

감자알 크기의 땅속을 내주는

여름 땅,

한 줌의 햇살과

한 손바닥 빗물만으로

둥글둥글 살찌는 감자는

삐걱거리지도 않고 툴툴거리지도 않고

모난 종자쯤은 스스로 버린다.

 

, 세모에 단 한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주렁주렁 둥근 대답을 듣는다.

 

 

 

 

 

 

 

 

 

 

 

공지사항

 

 

아침에 일어나면

날짜와 요일을 꼭 확인하세요.

당신의 날인지 아니면

당신을 기억하는 누군가의 날인지.

많은 사람이 나의 날이 아닌 날들을

열심히 계산하면서 살아가지요.

세 번 거짓말한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알면서도

하루 세 번, 삼십 번

양들의 공포 속에서 살아요.

양의 털은 부풀어 오르는 일을 하고

그 털을 깎지 않으면 죽어요.

그러나 그 털을 깎고

앙상한 당신을 보게 된다면

당신이 죽겠죠.

 

그런 날들 속에서

출근을 하고, 부서를 배정받고, 시무식을 하죠.

급여를 받고 승진도 하면서 마지막 여분에는

누구나 의연하고 비겁해지죠.

자신을 용서하고 떠나버리거든요.

실재하는 슬픔과 장례절차들만 남아요.

그러니 제발

일어나면 먼저 날짜를 확인하세요.

오늘이 당신의 날인지 아니면

당신을 기억하는 누군가의 날인지.

 

 

 

 

 

 

 

 

 

 

유사시

 

 

소화기 속에는

유사시가 가득 들어있다.

가벼운 안개 같은 것들이 고요하게

안전핀 하나로 견딘다.

수도승 자세로 굳어가는 고체의 분말은

묵직한 유사시를 기다리고 있다

저 빨간 통 속엔

흰 눈발이,

밤사이에 내리고도 남을 눈밭 하나가 들어있다.

소복소복 거리는 발자국들이

압력솥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치솟는 불길을 질식시킬

무산소의 분출이 꾹꾹 참고 있는 저곳

유통기한이 지난 흰 눈발도

참고 참다가 분출도 없이 스스로 질식한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 한 귀퉁이 폭 찌르면

펑펑 눈송이들이 쏟아질 것 같은

적재적소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저 빨간 유사시들,

어디선가 소방차 소리가

꽉 막힌 길을 뚫고 있다.

 

 

 

 

 

 

 

 

 

 

 

맑은 날을 매다

 

 

아내가 빨랫줄을 매달라고 해서

빨랫줄을 찾습니다.

 

분명 한 뭉치 밧줄을 들통에 넣어두었는데

빗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마다 물기를 짜낸 것이 분명한 빨랫줄은

맑은 날과 또 다른 맑은 날을 양쪽으로 매야 할까요.

그러면 새들은 일렬을 배우고

나란히 라는 말을 갸웃거릴까요.

저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매려면

얼마나 많은 줄이 필요할까요.

 

줄에 매달린 빨래도

뼛속 깊숙이 끊어진 곳이 많았는지

뚝뚝 물을 끊어서 버리는 중입니다.

 

흐린 날이면 길고 팽팽했던 맑은 밧줄이 사라집니다.

세상 어디에도 흐린 날로 맨 빨랫줄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 날 새들은 나란히 또는 일렬이라는 말을 잊고

하늘 여기저기로 헝클어질 것입니다.

 

빨래들은 흐렸다 맑아지곤 했습니다.

맑은 날의 끝을 잡아당기면 온갖 호우주의보와

비 올 확률이 묵직합니다.

들통에 가득 받아 놓은 빗물이

언젠가는 빨랫줄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키워야겠습니다.

그러면, 맑은 날을 휘청휘청 걸어온 바지나

셔츠의 주머니 속에는 구겨진 빗줄기가 남아있겠지만

맑은 날은 여전히 가지런합니다.

 

 

 

 

 

 

 

 

 

 

 

밑이라는 곳

 

 

숨을 곳 없을 때 어느 밑을 생각해보자. 불빛 일렁이는 등잔불 밑은 말고 소나기 쏟아지는 적란운 밑도 말고 낙화나 보게 될 한여름 밑은 더더욱 말고 그저 하찮고 투박한 돌 밑 같은 곳. 그 좁은 틈새에서 재빨리 달아나는 미물들처럼 한없이 가벼운 것들일수록 무거운 돌 밑에 숨는다는 사실.

 

기우뚱거리다 넘어진다면,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전과도 같은 그런 밑. 그런 곳에는 체념이 웅크리고 있고 제 몸에 딱 맞는 조도照度가 있다는 것.

 

내가 아닌 곳이라면 어디든 숨을 수 있는,

 

아픈 발바닥이 있다면 가야 할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가장 부끄러운 밑에 숨죽이다가 그 아래 꿈틀거리는 미물들에게 위로를 받자. 누군가 납작한 처지를 들춘다면 불현듯, 소름 돋는 미물의 처지를 하소연하자. 숨어서 수많은 발만 키워온 다지류多肢類라고 알려주자.

 

세상의 어떤 바위 밑에도 다 바글거리는 틈이 있다고 보여주자.

 

 

 

 

 

 

 

 

 

 

 

 

서류 가방과 이별하다

 

 

비트겐슈타인과 쉼보르스카를 읽으려다

오랜 친구 샘소나이트를 떠나보냈다

언젠가 야수로 돌변한 가방 이야기를 읽은 적은 있지만

그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무한 회전하는 2호선 전철을 갈아타고 있을 때

한 손에 매달려 종일 따라다니고 있는

또 누군가의 시집을 바라보며

그에게도 잠깐이나마 쉴 시간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

나도 잠깐 어디에 기댔으면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말 없는 내 친구도 좀 쉬게 하려던 때였다

 

원래 가방들은 내성적인 사각이라

묵묵히 한 줄의 이빨들을 열 수도 있겠지만

수정하려고 인쇄해 놓은 궤양의 흔적을 보고

내가 시인인 줄 알려줄 테고

수첩 속 일과표는 내가 어디쯤 있을지 말해주겠지만

웬걸 이리 많이 먹어치웠냐고 타박도 하겠지만

 

낡고 허름한 겨울 같아서

곳곳에 하얀 가시가 도사리고 있고

만질 때마다 타다만 재가 묻어나 아무도

내 가방을 열어보지 않을 것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어젯밤 시작 노트를 꺼내 논 것이

다행일지 불행일지는 모르겠고

가끔 터진 실밥을 태우는

불 고문을 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더는 짐꾼 노릇을 안 해도 돼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선반 위에서나 분실물센터 창고에서

곰곰이 긴 시간을 취할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지만

뻣뻣한 손때가 손끝에서 너무 가볍고

떠나간 역할을 위해

몇 개의 손을 더 구입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무감각

 

 

굳은살을 떼어내면서

감각이 흘린 무감각을 생각한다.

칼날이 들어와도 겁내지 않는 곳이

내게도 있다.

피 흘리지 않는 곳이 있다.

 

점점 남의 살이 되어 가는 곳

전생의 원한이 몰리는 곳인지

자꾸 칼을 들이대게 된다.

아주 오래전 무감각의 날들일 때 나는

감각 없는 울음을 울어 재꼈다.

구분을 배우지 못했던,

내 사족이 내 말을 듣지 않았던 그때로

살들은 조금씩 두꺼워져 간다.

 

걸음을 걸으면서 얻은 숭배의 감각들이

점점 나를 떠날 때가 온다.

살에는 혈육이 없고 남겨진 지문도 없어

한번 버려진 것들은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버려진 것들이 모이는 곳에선

뒤따라올 누군가를 기다리곤 한다.

감기를 앓고 나면

각막에 굳은살이 박인다.

 

조금 더 깊이 찔러 본다.

찌릿한 통증으로 빠져나가는

내 몸의 축을 느낀다.

 

 

 

 

 

 

 

 

 

이도훈 시인

온새미로 동인

2015년 월간 <시와표현신인상 수상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시부문

도서출판 <도훈대표

시 잡지 시마詩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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