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참 빨랐지 그 양반

이정록(1964~)시인시 참 빨랐지 그 양반 낭송

- 작게+ 크게

최창영시인
기사입력 2018-04-22

 

▲     © 시인뉴스 초록향기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이게 이녁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시 참 재밌다. 
어쩌면 시인은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을까? 
우리 인생도 이랬으면 좋겠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시인뉴스 Poe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