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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죽전역 외1편 / 강빛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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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기자
기사입력 2019-07-11

 

▲     © 시인뉴스 Poem



뛰어라, 죽전역

 

 

핏발 선 아침을 메고 걸었다

신발 닳는 소리가 쪼개졌다

 

걸음을 따라 지하철이 바빴고

역의 이름들이 유리문을 흔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목들이 일제히 전화기에 인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주문을 외듯

뭐든 시작하고 있다는 건 아름답지 않습니까?”*라고 중얼거렸다

 

읽다 만 책처럼

간밤, 눈이 붉어진 사람끼리 같은 자리에 앉았다

채울수록 차가워지는 게 많아서

당신은 머리가 길어진다고 했고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전화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책 속을 떠다녔다

 

어떤은 또 어떤을 달고

꼬리가 길어지는 페이지에서

시작을 다독이는 나와

끝이 분명하면 좋겠다는 당신이 신발 끈을 묶었다

 

어느 곳에 마음을 쏟았는지

알수록 아는 게 없는데

물음표가 다음 역을 물었다

 

뻑뻑한 아침이 먼저 내리고 있었다

 

 

 

*기형도 시인의 소리1에서 인용

 

 

 

낙하의 방

 

 

하루를 쏟아놓던 아빠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약속한 듯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불어오는 바람은

아빠의 힘줄을 당기지 않고

허공에서 그림자를 지우는데

 

그때마다 알고 있는 아빠보다

모르는 아빠가 쌓여갔다

 

보고 싶다는 말이 흘러내리는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들춰보는 일 따위

애완동물을 기르는 일보다 신경 쓰여

눈을 감았다

 

틈으로 몽상가의 눈빛이 지나갔다

반쯤 젖은 새 한 마리도 지나갔다

 

아빠가 아빠였을 때

동그라미는 모두 태양이었고

거대한 말들은 바퀴를 돌리고 있었죠

 

언제부터인가

벽이 신음하는 아빠의 방

 

누운 깃털에서

구겨진 지폐에서

 

그리워할 것이 없는 그리움이 구부러져

덜커덩 소리가 났다

 

마모된 바퀴 속에서

찢긴 날개의 새 한 마리

파드득거리며 날아갔다

 

 

 

 

 

 

시인 강빛나 약력

 

경남 통영 출생

2017미네르바로 등단

단국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재학

현 계간지 미네르바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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